지난 7월23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린 잠실 구장. 경기 시작 전 중앙출입문 앞에서 오랜 만에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을 만났다.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외야수에 선정된 장 감독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아니, 건강한 게 어쩌면 당연했다.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특유의 '올백 스타일'에 파란색의 레전드 올스타 정장을 맵시있게 차려 입었다. 광을 한껏 낸 구두는 반짝반짝 빛났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군살 없는 몸매에 얼굴에선 전혀 병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감독님, 올해도 잘하면 우승하겠네요"라고 덕담을 건네자, 장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는데 두고 봐야죠"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현역 시절 4차례나 타격왕에 오르며 범접할 수 없는 '통산 타격 1위'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삼성 유니폼을 입고 그렇게 소망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은 한번도 맛보지 못했다.
짧은 대화를 마친 장 감독은 발걸음을 재촉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리무진을 타고 레전드 올스타 행사에 입장한 장 감독은 잠실 구장을 가득 메운 2만 7,000명의 관중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는 이만수 선동열 김재박 이순철 장종훈 양준혁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야구의 전설들과 함께 핸드 프린팅으로 자신의 자취를 남겼다. 팬들이 본 장 감독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한달 뒤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다. 장 감독이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레전드 올스타 행사가 끝난 후 몸에 이상을 느낀 장 감독은 삼성의료원에서 정밀 진단 결과 위암과 간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견을 받았다.
최고수준의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병원에서조차 '암세포가 너무 퍼져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며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 받기를 권했다. 장 감독은 결국 부산 동아대병원으로 옮겨 투병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나 장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구단을 통해 "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 특히 (2군)선수들이 동요할 수 있으니 병명을 절대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삼성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고, 2군 선수들에겐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그러나 지인들의 문병은 완강히 거부했다. 30년 지기인 송삼봉 삼성 단장도 지난달 30일 병원을 찾아 간곡한 부탁 끝에 장 감독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 감독이 투병을 하는 동안 삼성은 KIA를 제치고 단독 선두를 달렸다. 올스타전 직후인 지난 7월27일 1위를 탈환한 이후 40일 넘게 순위 맨 윗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삼성이 올시즌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선두를 질주한 데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 장 감독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 스카우트를 맡아 '원석'을 발굴했던 장 감독은 지난해부터는 2군을 지도하며 선수들을 키워냈다. 이영욱, 배영섭, 모상기, 손주인, 정형식 등이 모두 장 감독의 혹독한 조련 아래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2군의 성장은 1군 성적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 연말 자신보다 7년 후배인 류중일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잡았지만 그는 2군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한평생을 야구에 바쳤던 장 감독은 결국 55세의 한창 나이에 눈을 감았다. 2011년 9월7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은 그렇게 스러졌다. 한국 프로야구는 커다란 별을 잃었다.
■ 고 장효조 감독은…
1956년 부산 출생
1972년 대구상고 입학
1973년 황금사자기·대통령배·봉황기 우승, 봉황기 타격상 최다안타상
1974년 봉황기 우승, 타격상
1975년 한양대 입학
1979년 포항제철 입단
1980년 입대(육군 경리단)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4번 타자로 출전 우승
1983년 삼성 입단, 타율(0.369) 최다안타(117개) 1위, 골든글러브 수상
1984년 골든글러브 수상
1985년 타율(0.373) 1위, 골든글러브 수상
1986년 타율(0.329) 1위, 골든글러브 수상
1987년 타율(0.387) 1위, 최우수선수(MVP), 골든글러브 수상
1989년 2대2 트레이드(삼성 장효조 장태수↔롯데 김용철 이문한)로 롯데 이적
1992년 은퇴
1994년 롯데 코치
2000년 삼성 2군 코치
2005년 삼성 스카우트
2010년 삼성 2군 감독
이승택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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