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실을 감안한 절충이었다."
정부의 내년 세제개편안 발표일(7일) 오전에 당ㆍ정ㆍ청이 감세 철회에 전격 합의한 배경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이 한 마디에 압축돼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끝까지 감세기조 유지를 바랬으나, 결국 표심을 의식한 당의 '집요한' 요구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임 실장은 "정부는 (감세를) 그대로 가도 재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워낙 국회에서 (복지 등) 새로운 요구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주 현실적으로 절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여론에 밀려 '친기업'과 '성장' 대신 '친서민'과 '공생'으로 돌아섰던 이명박 정부는 임기 1년 6개월을 남겨놓고 MB노믹스의 마지막 자존심이던 감세마저 접게 됐다.
"부자정당으론 선거 못 이긴다"
여당이 추가감세 철회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던 6월 의원총회. "지역에서 한나라당은 부자정당", "추가감세를 강행하기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는 불만들이 쏟아졌다. 이후 여당 내에선 감세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임 실장도 감세 철회 배경에 "당의 강한 압박"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당장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이미지 변신 없이는 표를 얻기 어렵다는 여당의 절박함이 이번 철회를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번 감세 철회 대상은 철저히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됐다. 과세표준 2억원 초과 기업이 대상이던 법인세 감세는 2억~100억원(한나라당 주장) 또는 2억~500억원(정부 주장) 인 기업까지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400여개의 대기업만 감세 혜택에서 제외된다. 소득세 역시 과표 8,8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감세 혜택만 무산돼 그간 야당에서 주장하던 '부자감세 철회' 요구가 그대로 관철된 셈이다.
여기에 갈수록 높아지는 유권자들의 복지 요구를 뒷받침할 최소한의 재원을 마련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한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서도 감세 철회를 통한 세수확대는 불가피했다. 임 실장은 "오늘 결정은 철회가 아닌 중단 또는 유예"라며 "당장 상황이 어려우니 잠시 감세추진 시기를 늦추고 추후 다시 논의하자는 취지"라고 주장했지만, 내년 구성되는 새 국회나 다음 정권에서 감세 논의가 지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남은 불씨
당ㆍ정ㆍ청의 전격 합의에도 불구, 후폭풍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당정은 과세표준 2억원 초과 기업들에게 22% 법인세를 물리던 기존 세법 체계에 한 구간을 더 만들어 이 구간 기업에게는 예정대로 세율을 낮춰주자는 데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추가 구간에 대해 한나라당은 2억~100억원을, 정부는 2억~500억원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만, 한나라당은 '대기업+중견기업'까지 감세에서 제외하자는 의미다.
야당은 한발 더 나간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의 입법안은 2억원 초과 기업에 전면 감세 철회를,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새 구간을 2억~50억원으로 좁힌 법안을 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아예 1,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증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당정은 물론, 여야 간에도 입장 차가 커 향후 국회 세법개정 과정에서 이번 정부 안이 그대로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3년 내리 시도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 폐지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법인세 감세 철회로 세부담이 늘어나는 대기업들이 설비투자 대가로 약속 받던 임투마저 사라지는 걸 달가워할 리 없다. 정부는 대신 고용창출투자세액 공제한도를 늘려주겠다는 당근을 내세웠지만, 이를 감안해도 세부담이 1조원 가량 늘어날 전망이어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재계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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