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몇 기냐, 어디서 그 따위로 배웠냐",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적어내기만 하고 우기기만 하면 되는 거냐", "시간을 초과하면 무조건 질문을 못하게 해버리겠다" 판사가 법정에서 변호사에게 한 말이다. 변호사에게 이런 인격 모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 판사들이 사건 당사자에게 한 말은 더욱 놀랍다. "이혼했는데 무슨 말을 해, 가만히 있어", "당신이 어머니냐, 입은 터져서 아직도 계속 말이 나오냐", "아니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귀가 안 좋네" 39세 판사가 69세 당사자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튀어나오느냐"고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품위 있는 언어 사라진 법정의 현실
누구라도 한 번 법정에 와서 판사에게 이런 막말을 들으면 그 때의 치욕을 평생 잊지 못한다. 판사에게 인격을 무시당한 국민이 판결에 쉽게 승복할 리 없다. 이는 사법불신을 낳는 큰 원인이다.
사법부의 재판권은 헌법에 근거한 것이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이 선언하고 있으므로 재판권은 국민이 사법부에 위임한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인격을 무시하는 권위적인 재판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망각한 권한남용이다.
어느 지방법원의 '법정운영표준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법정은 엄정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에서 불필요한 권위주의적 요소를 배제하여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품위와 질서가 최대한 유지되도록 해야 하며 재판장은 온화하고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모든 소송 관계인에게 경어를 사용해야 한다.'
법원의 내부 기준조차 지키지 못하는 막말 판사에 대해 비판의 여론이 높아도, 국정감사에서 지적 받아도, 대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로 징계 한번 한 적 없다. 참다못해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6월 '친절성'을 법관의 근무평정기준으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일부 판사들은 친절성 등 주관적인 부분을 어떻게 수치화해 근무평정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모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판사의 친절도는 법정에서 소송관계인에 대한 언어와 태도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근무평정을 하는 법원장이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보지 않는 현실에서 그 판단은 자칫 소문에 의해 평가하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승진인사와 연임심사, 보직과 전보 등에 영향을 미치는 근무평정은 부실화된다.
판사의 친절성은 재판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는 평가할 수 없다. 그래서 재판에 참여한 사건 당사자가 평가할 수 있음은 물론, 무엇보다 법률 전문지식을 가지고 여러 법정에서 많은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이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변호사는 오랜 기간 동안 당사자와 호흡을 같이 하며 재판진행의 속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08년 처음으로 '법관평가제'를 시행하여 판사의 자질 및 품위, 공정성, 사건처리태도 등을 평가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법관평가에서 변호사들은 공통적으로 고압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판사를 '나쁜 판사'로 평가했다. 법관평가의 결과를 대법원에 전달했지만 대법원은 당사자와 다름없는 변호사의 평가라며 무시하고 있다.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법원장의 말과는 너무 다른 입장이다.
판사 스스로 권위주의 벗어나야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법리에 밝은 판사보다 신뢰받는 판사가 되기 어렵다"며 "가장 유능한 판사는 당사자의 신뢰를 받는 판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뢰를 받는 사법부는 국민이 친절하고 성실한 판사를 만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판사의 친절성 평가는 판사를 가장 잘 아는 소송관계인에 의해 객관적인 방법으로 정확히 이루어져야 하고 그 결과를 근무평정에 반드시 반영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법부의 권위주의는 판사의 친절과 성실에 의해 스스로 타파할 수 있다.
하창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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