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엄마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남대문 시장엘 가셨다. 우리 3남매의 설빔이나 추석빔 같은 새 옷을 사러 가셨는데, 복잡한 시장에서 빨리 장을 보고 내려와야 해서인지 우리를 데리고 가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서울에 가신 날이면 나와 남동생은 동인천역 광장으로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러 나갔다. 서울서 내려오는 전철에서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속에 혹시 엄마가 있으려나 목 빼고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운이 좋을 때는 이삼십 분 만에 엄마가 오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두어 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아 '이번 전철까지만'이라고 동생을 달래며 하염없이 전철을 지나 보내던 기억도 난다. 드디어, 한 보따리-그때는 너무 어려서인지 엄마의 짐 보따리가 참 무겁고 커 보였다- 짐을 들고 내리는 엄마를 발견하면 깡총거리며 엄마에게 매달려 신나 했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새 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다가 벽 한 켠에 새 옷을 걸어놓고 바라만보며 빨리 명절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요즘도 엄마들이 추석 빔이나 설빔을 장만하러 시장에 가는지 모르겠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가 바로 집 근처에 들어서 있는데다, 평소에도 인터넷으로 홈쇼핑으로 편하게 옷을 주문해 사는 시대에 굳이 명절날 입을 옷을 새로 장만하는 풍속은 없어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중학교 2학년짜리 딸아이한테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 옷이나 신발을 선물로 준 적은 있어도 추석 빔이나 설빔을 따로 장만해서 입혀본 기억은 없다. 지금은 예전처럼 옷이나 신발이 귀한 때도 아니고 중학생 정도만 되도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그대로 입으려는 아이들은 없으니 추석 빔이나 설빔은 명절 풍속을 소개하는 책 속에나 나오는 옛날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닌지.
에 따르면,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새로운 시간대로 진입하는 통합의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설날이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의례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추석은 햇곡식을 먹게 되는 수확의 시작의례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새로운 시간대로 진입하는 의례-조상께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하고, 가족 친지들과 덕담도 나누는-에서 평소보다 더 정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속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무더웠던 여름을 접고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포근한 옷 한 벌 장만하는 것은 추석 즈음엔 현실적으로 더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은 역 앞의 광장도 사라진 지 오래고, 휴대전화 덕분에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일도 없어졌다. 옷이나 신발은 너무 흔해져서 명절 때 특별히 장만해서 입어야 하는 설빔이나 추석 빔 같은 풍속도 사라져간다. 추석이 코앞인데 햇곡식, 햇과일을 먹는 수확의 기쁨을 모두가 나누고 누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인천에 사는 내가 날마다 출근하며 지나는 서울역 안에 노숙자들이 사라진 지 몇 주 되었다. 추석 빔 떠올리다가 갑자기 이 분들이야 말로 겨울을 준비할 포근한 옷 한 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한다. 어릴 적 추석 빔 사러 간 엄마를 기다리던 생각, 비싼 물가에 차례상 차릴 걱정, 가족도 집도 없이 거리에서 명절을 맞을 노숙자들 걱정까지, 오지랖 넓은 아줌마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도 있듯이, 그래도 모두들 한가위에 행복하시길.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