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상속ㆍ증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안이 7년 만에 확정됐다. 정부는 아들 기업이 아버지 기업에서 일감의 30% 이상을 받았을 경우 증여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통한 세수효과는 연간 1,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때문에 실제 이득을 본 액수보다 과세액이 턱없이 적어 재벌기업에 면죄부만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04년부터 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 등은 "대기업 오너들이 2세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계열사 일감을 몰아줘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등 변칙 상속을 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정부는 상속ㆍ증여세법을 완전포괄주의(사실상 재산의 무상 이전에 해당하면 증여세를 물리는 제도)로 전환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2007년 국세청이 별도 규정을 마련키로 하면서 논의가 본격화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공청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의 주식가치가 증가한 부분에 대해 세금을 매길 것인지, 영업이익에 대해 세금을 매길 것인지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정부는 이 가운데 영업이익을 과세 기준으로 삼았다. 일감을 넘겨받은 회사의 영업이익은 배당이나 주가 상승을 통해 결국 일감을 준 사람의 이익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주식가치는 세계 증시상황이나 조작에 의해 하락할 수도 있어 채택하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기준선은 거래비율 30%다. 예컨대 납품업체 B사가 친인척(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이 운영하는 A사와 1년간 거래한 비율이 30%를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로 본다. 과세 방식은 이렇다. B사의 세후(稅後) 영업이익이 1,000억원이고, A사와의 거래비율이 80%, B사 대주주의 주식 보유비율이 50%라고 가정해보자. 일감 몰아주기로 대주주가 얼마나 이익을 봤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영업이익(1,000억원)에 거래비율(80-30=50%, 30% 초과부분만 반영), 대주주 보유비율(50-3=47%, 대주주 지분 3% 초과부터 과세대상)을 반영하면 235억원이 과세표준이 된다. 여기에 증여세율(50%)을 곱하고 누진공제(4.6%)를 해주면 증여세는 총 112억9,000만원이다.
현대차그룹의 비상장 물류회사인 글로비스는 일감 몰아주기의 전형적인 과세 대상인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매년 내야 할 증여세는 5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글로비스가 지난해 1,697억원의 세후 영업이익을 올렸고 내부거래 비율은 46%이며, 정 회장이 14.6%, 정 부회장이 31.88%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초 받은 배당액의 10%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정 회장 부자가 일감 몰아주기로 글로비스를 수조 원대 회사로 키워 얻은 이익에 비하면 매우 적은 액수다.
정부는 과세안 마련을 위해 공청회를 여는 등 공을 들였지만,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우선 법인의 영업이익 증가에 대해 별도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관건이다. 법인은 이익 증가에 대해 법인세를 냈고, 대주주는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에 대해 배당소득세를 납부했기 때문에 이중과세 논란이 일 수 있다. 과세 대상 법인이나 개인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과세액이 너무 적어 편법 행위에 면죄부만 주게 된다는 우려도 크다. 참여연대는 "29개 기업집단 지배주주 일가 192명이 일감 몰아주기로 지금까지 8조6,393억원을 벌었는데, 정부는 고작 1년에 1.16%(1,000억원)를 내면 합법적인 증여행위로 간주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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