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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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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아니다

입력
2011.09.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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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안철수 쇼크는 크고도 깊다. 정치권이 무참히 조롱 당한 것을 통쾌히 여기는 이들도, 모처럼의 기대가 실망으로 끝난 허탈감을 어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한국정치의 취약성을 개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변화의 잠재성을 확인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만한 힘을 보여준 인물은 앞으로도 쉬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현상의 배경은 익히 아는 대로 현실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다. 각종 이념조사에서 늘 나오는 40% 중도성향은 아마 정치불신층과 대체로 겹칠 것이다. 최근의 선거결과도 정당 일체감이 갈수록 약화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광역단체장서부터 시ㆍ군ㆍ구 의원까지 한꺼번에 뽑은 지난해 6ㆍ2지방선거에서 동일 정당에 일관되게 투표하지 않은 분할투표 비율은 35%가 넘었다.

정체성 잃은 엿새 동안의 행적

이번에도 중도층 외에 그나마 기존 정당 지지층의 절반 이상이 안철수 지지를 표명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물론 열정, 헌신, 희생, 도전, 성취 등 발군의 개인적 덕목이 그 원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는 소년처럼 맑고 순수한, 산소 같은 남자의 이미지까지 갖췄다. 그야말로 돌연 백마를 타고 정치판에 등장한 왕자였다.

그런 그가 홀연 떠난 뒤 또 온갖 분석과 전망이 쏟아진다. 차마 보내기 아쉬워서든, 다시 마주칠까 두려워서든 저마다 속내는 달라도 모든 분석은 그의 대선출마 가능성으로 모아진다. 그러니 이쯤에서 큰 정치인으로서 그의 가능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론 시장 출마설이 나왔을 때부터 불안했다. 백마 탄 왕자는 딱 공주 입술에 첫 키스를 할 때까지만이다. 이후의 구질구질한 현실까지 이어가는 동화는 없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인 안철수로 대중에 노출된 엿새 동안 드러난 것은 그와 현실정치와의 분명한 부적합성이었다.

대중이 기대한 건 기존의 어떤 정파나 진영에 속하지 않은 전혀 다른 정치의 가능성이었다. “한나라당은 희망이 없고, 민주당은 대안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곧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원순 변호사와의 단일화와 그의 범야권연대를 통해 기성정치의 한편에 그의 정체성을 안이하게 의탁해버리는 모양새가 됐다. 더욱이 박 변호사는 품성과 사회적 기여와는 별개로 우리 현대사에 대한 평가, 대북인식, 안보문제 등 여러 극단적 이념논란의 한쪽 핵심당사자다. 이건 아니었다.

인터뷰하는 매체의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기존 정당의 평가가 바뀌는 모습도 불안했다. 아직 확신이 없거나 섬약함의 표출일진대. 어느 쪽이든 현실정치를 견뎌낼 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윤여준 전 장관을 냉정히 내친 언사도 사소하지만 인간적으로 실망스러운 처신이었다. 그의 불출마 결정에는 정치적 이해집단에서 쏟아진 욕과 비판에 상처받은 것도 큰 이유가 됐을 것이다.

아쉬워도 현실 정치에서 해법을

정치의 목적은 가치의 실현이되, 내용은 이해의 타협 조정이다. 당연히 최선이 충족되지 않는 모든 상대로부터 늘 비판 받고 상처받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감당하려 들지 않은 것이 전ㆍ현 정권이 성공적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다. 안 교수 역시 실현하고 싶은 가치만 염두에 두었을 뿐 정작 실현방법에는 무심했던 것 같다. 그의 불출마 선언에 당장 한나라당은 “밀실에서 야합하는 좌파 단일화 정치쇼”라고 구정물을 쏟아 부었고, 민주당은 “민주진보진영의 소중한 동지”로 약삭빠르게 틀을 씌웠다. 이런 게 우리 정치문화다.

그는 애당초 진흙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그의 순백 이미지가 오염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대중이 원하던 안철수가 아니게 된다. 현실정치와의 부적합성은 도리어 그에 대한 인간적 찬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는 다시 본연의 안철수로 돌아가고, 대중도 부질없는 희망을 그만 접는 게 옳다. 기성 정치판에 던진 엄중한 경고만으로도 이미 그는 충분히 큰 일을 해냈다.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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