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스무 명 남짓한 관객을 모아놓고 공연하던 그들이다. 하지만 지난해 발매된 미니앨범이 최근 인디음반 판매차트에서 진입과 동시에 10위권에 드는가 하면, POE, 프렌지 등 다른 밴드와 함께한 공연은 전 좌석을 매진시키는 '사건'까지 만들어냈다. '새로운 대세'로 떠오른 이들은 인디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다.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을 세상에 알린 데는 KBS 'TOP밴드'의 힘이 크다. 'TOP밴드'는 조별 예선, 16강, 8강 등 토너먼트 방식으로 극적 흥미를 더하며 밴드 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를 통해 많은 밴드들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최대의 수혜자는 역시 게이트 플라워즈다. 현재 8강전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들을 6일 경기 일산의 연습실에서 만났다.
박근홍(보컬), 염승식(기타), 유재인(베이스), 양종은(드럼)으로 구성된 게이트 플라워즈는 요즘 갑자기 나타난 밴드가 아니다. 2005년 결성돼 2009년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 선정하는 '10월의 헬로루키'로 주목을 받았고, 올해 초에는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록' '올해의 신인' 부문을 수상하며 또 한 번 탄탄한 실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미미했다.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I♡MB'라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홍명보 감독님, 사랑합니다"라는 소감을 밝혀 웃음을 자아낸 이들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괴짜 밴드' 정도로만 기억됐다. 하지만 'TOP밴드'에 출연한 뒤 위상이 크게 변했다. 염승식은 "거의 새로 태어났다고 보면 된다"고 한마디로 정리했고, 박근홍은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하이파이브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력파인 이들도 방송 초반에 한 차례 탈락의 위기가 있었다. 음향 사고로 예선에서 준비한 공연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첫 출연 때부터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이들은 뜻밖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시청자들에게는 자신감으로 비쳐졌지만, 염승식은 "사실은 실수를 많이 해서 붙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나온 표정"이라고 고백했다. 유재인 역시 "떨어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주지 못하고 떨어질까 봐 걱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록음악마저 말랑말랑해진 요즘, 어둡고 무거운 멜로디와 가사를 담은 이들의 음악은 사실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쥐어짜듯 내지르는 박근홍의 보컬은 다듬어지지 않는 날것의 느낌이다. 염승식의 기타는 그의 외모처럼 날렵하고 예리하다. 그러나 언뜻 부조화처럼 보이는 외모와 달리, 이들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알아서 찾아가며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미니앨범에 들어 있는 곡 '후퇴'는 촛불집회 이후의 현실을 절망적으로 담아냈다. 양종은은 "방송에서 이런 종류의 음악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우리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인기는 그 음악적 정체성 덕이기도 하다. 'TOP밴드'에서 이들의 음악을 접한 30대 팬들이 부쩍 늘었다. 박근홍은 "90년대 초반 록음악 열풍에 빠졌던 분들이 비슷한 정서의 우리 음악에서 90년대의 향수를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TOP밴드' 덕에 인디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를 잘 활용해 인디밴드와 인디음악 전체가 활성화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묻자 박근홍은 "'TOP밴드'를 매년 하면 된다"며 껄껄 웃었다. "중요한 건 지상파 방송에서 밴드들을 꾸준히 다뤄주는 겁니다. 다른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제목만 바꿔서 'BEST밴드' 같은 걸로 확장시켜도 좋죠."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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