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인도영화 잡지가 발행되고 있나." 지난달 열린 제5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인도 감독 마노즈 스리바스타바가 던진 질문이다. 그의 손에는 독일어판 인도영화 전문지가 들려 있었다. "없다"는 답을 들은 그의 표정에는 세계 영화계에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 인도영화가 한국에선 푸대접 받는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과 실망이 역력했다.
발리우드로 불리는 인도영화는 한국 극장가에서 먼 나라의 낯선 콘텐츠다. 지난해 인도영화는 딱 1편 상영돼 280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았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3월 개봉한 '내 이름은 칸'이 38만1,025명을 모은 데 이어 지난달 18일 개봉한 '세 얼간이'가 28만3,342명(3일 기준)을 불렀다. 특히 '세 얼간이'는 좌석점유율 상위를 차지하며 극장가에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내 이름은 칸'은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세 얼간이'도 흑자(손익분기점 40만명 가량) 가능성이 높다. 한국 관객들이 인도영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는 세계 제1의 영화대국이다. 한해 제작하는 장편영화만 1,091편(2006년 기준ㆍ2009년 유네스코 자료). 영화의 나라 미국(485편)의 2배를 넘는다. 2009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안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영화의 특징들을 잘 살려 화제를 모았다.
세계적 콘텐츠인데도 인도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게 그 동안 멀게만 느껴진 이유로 서사와는 별 맥락 없이 이어지는 발리우드 특유의 군무가 꼽힌다. TV보급률이 낮은 인도에서 영화는 TV 버라이어티쇼의 역할도 해야 하기에 장시간의 가무는 필수요소. 이 때문에 상영시간이 만만치 않고 수출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세 얼간이'를 수입한 AT9㈜씨에이엔의 정상진 대표는 "인도 영화사들은 해외 상영판을 짧게 편집해 수출한다. 그러다 보니 종종 이야기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세 얼간이'의 인도 상영시간은 170분. 수출용은 120분이었으나 이야기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수입사의 판단에 따라 한국판은 141분으로 늘렸다.
제3세계 영화에 대한 선입견도 인도영화의 흥행을 막는 장벽이다. '발리우드 위대한 러브스토리'를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서의 관객 반응은 뜨겁지만 아직 섣불리 개봉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정상진 대표도 "흥행 늦바람을 타고 있는 '세 얼간이'의 초기 흥행 부진엔 제3세계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여러 장애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의 선전에 힘입어 인도영화 수입은 늘어날 조짐이다. 발리우드 화제작 '구자라시' '라원'도 올해 국내 개봉 예정이다. 인도영화의 최대 장점은 한 해 1,000편이 넘는 풍부한 자원. 이 중 한국인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고르기 용이하다. 정 대표는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는 미국 유학파들이 만든 영화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좋아할 인도영화들이 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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