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독일 연출가의 선택은 울림보다는 감성이었다. 3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우어파우스트'는 '파우스트'에 늘 따라붙는 '방대한 분량' '철학적인 내용'등의 수식어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독일의 30대 연출가 다비드 뵈쉬는 "연출자가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유리하다"며 연극의 텍스트로 괴테가 20대 때 쓴 '파우스트'의 초고 '우어(Urㆍ원형의)파우스트'를 선택했고, 긴 여운은 없지만 꽤 흥미로운 무대를 완성했다.
우선 주요 캐릭터가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었다. 파우스트(정보석)는 노년의 철학자가 아닌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공허함을 느끼는 40대 중반의 남성이다. 평범한 정장 차림의 메피스토펠레스(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또 다른 자아다. 파우스트보다 역할 비중이 컸던 메피스토(이남희)는 한없이 가벼운 말과 행동을 쏟아내며 이 시대 어떤 인물에게든 투영될 만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주요 캐릭터 외의 등장인물을 과감히 생략해 스토리라인은 명확했다. 그레트헨(장지아ㆍ이지영)과 오빠인 발렌틴(윤대열), 파우스트를 찾아왔다가 메피스토의 하수인이 되는 학생(김준호)과 신(神ㆍ정규수)까지 단 6명만 출연한다.
원작의 시간적 배경을 명시하지 않은 연극은 때로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로 읽혔다. 파우스트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소녀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에게 철저히 유린당한다. 최근 일련의 성범죄에서 보듯 여성의 성적 주체성은 수백 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존중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종종 관객과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메피스토의 모습은 마치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쇼를 이끄는 진행자 같았다.
배우가 무대에 침을 뱉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신체 표현을 서슴지 않는 등 말초적인 감성으로 무장한 신선한 해석의 연극이지만, 독일 연출가의 재기 넘치는 파우스트의 변주가 국내 관객에게 어떻게 읽힐지는 의문이다. 아무래도 우리의 이야기보다는 덜 친숙한 서양 고전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비중이 큰 그레트헨 역을 맡은 여배우의 연기가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한 점도 아쉽다. 공연은 다음달 3일까지.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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