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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허약한 진보

입력
2011.09.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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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ㆍ개혁 진영이 위기라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위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무산됐고 민주당 내 계파간 다툼은 도를 더해 가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자 매수 의혹 파문은 사건 진상이나 사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진보 진영에 대한 신뢰 기반을 흔들고 있다. 반한나라당을 표방했으나 진보ㆍ개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일으킨 신드롬은 진보 진영을 무기력증에 빠뜨렸다. 점점이 흩어진 그 모습들을 따라가면 진보 진영의 위기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가치와 신념의 실현을 위해 뛰는 진보 진영에 신뢰와 지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10년을 보내면서 국민과 진보 진영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현실 정치에 참여한 진보 진영 인사들의 거칠고 서툰 국정 운영, 그것도 모자라 기업인의 검은 돈까지 받는 등 권력을 향유하는 모습에 국민들의 혀 차는 소리가 들끓었다. 진보 진영에서도 파열음이 생겨 났다.

집권 욕구만 강한 진보 진영

권력을 보수 진영에 넘겨준 뒤에는 어땠을까. 나아졌을까. 진보 진영에서조차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낼 담론을 주도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다는 비판과 탄식이 꾸준히 나왔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진보적 시ㆍ도 교육감 6명을 탄생시키고 지난 4ㆍ27 재보선에서 야당이 사실상 승리하자 '승자의 함정'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표심이 진보 진영에 대한 지지보다 보수 정권에 대한 실망과 염증에 터잡은 것임을 알면서도 기회를 살려 내부 역량을 키우고 힘을 결집하는 데 소홀했다. 반면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과 기대는 더 높아졌다.

정권 탈환, 재집권에 대한 집념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기초자치단체장만 바뀌어도 주민 삶이 달라지는 판에 하물며 국정 주체가 바뀌는 것의 의미는 엄중하다. 게다가 10년 집권의 후회와 아쉬움이 클 테니 재집권에 대한 열망 또한 각별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어 진보 진영의 찢어진 상처에 단단한 새 살이 돋게 하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집권 집념은 공허하다.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모을 수 있는 정책의 틀과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을 다듬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집념은 유약하고 위태롭다.

곽 교육감과 안 원장이 중심에 선 파문들이 진보 진영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곽 교육감이 2억원 제공 사실을 고백했을 때 즉각 진보 진영 일각에서 책임론, 사퇴론이 터져 나왔다. 서울시장 보선, 나아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악재가 될까 염려한 나머지 저간의 사정과 상황은 살펴보지도 않은 채 선 긋기부터 시도했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누구인가. 진보 진영이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는 '서울의 교육 대통령'이다. 2억원 제공은 분명 잘못이지만 무턱대고 사퇴부터 요구한 것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진보 진영의 소중한 가치와도 결별할 수 있다는 집권지상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런 태도가 진보 진영의 버팀목이 되어준, 적어도 진보 진영의 가치에 공감하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허약 체질부터 먼저 바꿔야

진보 진영이 '안철수 신드롬'에 허둥지둥한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차지하는 공간이 그리 크지 않고 기반도 탄탄하지 않다는 것, 재집권 실패 후 민심과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는 것, 중도 진영에 속한 이들을 끌어올 수 있는 정책과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진보 진영은 허약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 아닐까.

이토록 허약한 체질과 체력으로 집권을 꿈꾸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려는 격이다. 다시 집권하고 싶다면 진보 진영은 허약한 체질과 체력을 보강할 방안부터 찾을 일이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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