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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권력이 된 대형 유통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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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권력이 된 대형 유통업체

입력
2011.09.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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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유통시장은 대형유통업체와 전통적 소매상으로 급속히 양극화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의 급성장은 규모의 경제가 주는 장점과는 별도로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소유통업체를 몰락시키고 납품업자에게 불공정거래를 강요하는 문제를 유발한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대규모소매업법(안)'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부 차원의 결단을 촉구하는 성격이 짙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납품업체들이 실제로 대형유통업체로부터 부당반품, 부당감액, 판촉비 부당전가 등의 불공정거래를 강요당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거래행위는 현행 '대규모소매업고시'에 의해 금지되는 법위반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가 계속된다는 것은 관련 고시가 규제의 틀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행위는 적발하기 어렵고 또 적발해도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하기 위해선 납품업자의 피해신고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납품업자의 절반 가까이는 대규모 소매업고시나 신고포상금제도를 모른다. 고시는 법률이 아니어서 법전에도 수록되지 않는다. 또 신고제도를 아는 경우에도 대형유통업체로부터 거래중단을 당할 것이 두려워 공정위의 제재절차에 협조하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행위는 구조적으로 증거포착이 어려운 소위 '보이지 않는 범죄(법위반)'에 해당한다. 이는 담합보다도 죄질이 더 나쁠 수 있다. 담합은 담합당사자 상호간의 자발적 합의에 따라 신고하지 않지만,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행위는 거래당사자의 자발적 합의가 아니라 대형유통업체의 협박에 의해 납품업자의 신고가 억압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경쟁법 체계상 공정위가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선 그 행위의 부당성까지 증명할 것이 요구된다. 공정위가 이 요구를 충족하려면 통상 500개 이상의 납품업체를 일일이 조사해 그들과 해당 대형유통업체 사이에 행해진 불공정거래행위를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이러한 법집행방식이 인적‧물적 자원의 투입 대비 산출효과에 비추어 비효율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자연히 대형유통업체의 법위반행위가 감지되어도 실효적 억제책이 제대로 강구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적 이유로 인해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소매업법(안)'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대응책을 담고 있다. 고시의 주요 내용을 법률로 승격시키고, 일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대형 유통업체에게 증명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범죄'라 하여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단지 증거포착이 어려울 뿐이다. 증거포착이 어렵다고 그에 대한 대처를 소홀히 하는 것은 법집행상 다른 사회계층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다. 법집행의 공평성을 위해선 이들 법위반에 대한 증거수집과 증명이 쉬워져야 한다. 현행 고시를 법률로 승격시키면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법위반사실의 신고가 촉진된다.

여야는 물론이고 정부까지도 이 법률의 제정에 뜻을 같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우리 사회에 넘치는 '정의'와 '상생'이란 단어가 말의 성찬을 넘어 실제로 구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영홍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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