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전남 여수 앞바다를 지나던 여객선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해양경찰과 해군의 신속한 구조작전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선박 내 대피 안내방송이 늦어진 데다, 일부 구명장비는 작동하지도 않아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6일 오전 0시 40분께 전남 여수시 삼산면 백도 북동쪽 11㎞ 해상. 전날 오후 7시께 부산항을 떠나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현대설봉호(4,166톤)에서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차량 85대와 화물 125톤이 실려 있는 선미 1층 화물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난 것이다. 폭발음에 잠에서 깬 승객 104명은 하나 둘씩 화재 사실을 확인하고 객실을 빠져 나와 대피했지만 정작 대피 안내방송이 내려진 것은 10여분 뒤였다.
승객 이모(36)씨는 “승객들이 옷가지 등을 챙겨 대피하기 시작했는데도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은 없었다”며 “객실 스피커에서 ‘지지직’하는 잡음만 나왔다 끊겼다를 10여분간 계속된 뒤에야 대피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구명조끼를 챙겨 입은 승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갑판으로 몸을 피했지만 또 다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화재 열기로 갑판 바닥이 뜨겁게 달아오른 데다, 배에 있던 구명사다리까지 펴지지 않아 갑판에서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겁에 질린 일부 승객들은 7~8m 아래 바다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공포에 속에서 40여분이 지나자 해경 경비함과 해군 고속정 등 20여 척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작업은 신속히 이뤄졌다. 해경은 승객들을 진정시킨 뒤 밧줄을 이용해 고무보트에 10명씩 태웠고, 곧바로 경비함에 옮겨 태웠다. 이 과정에서 승객과 승무원(26명)들은 노약자와 어린이, 여성을 먼저 구조할 수 있도록 협조해 구조작업은 1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1998년 건조된 현대설봉호(길이 114.5m, 폭 20m)는 2000년 금강산 해상관광에 투입됐다가 2004년 11월 퇴역한 뒤 부산-제주 여객선으로 이용돼 왔다. 해경은 설봉호를 여수항으로 예인, 승무원 등을 상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여수=김영균기자 ykk22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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