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사는 A씨는 지난해 7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가맹비와 임대보증금 등 5,000만원을 들여 편의점을 창업했다. "상권 분석을 했더니 여기는 편의점을 출점하면 매월 200만원 수익이 난다. 혹시 수익이 안 나더라도 본사에서 매월 500만원의 지원금이 나온다"는 직원의 말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다른 프랜차이즈와 달리 본사에 내야 하는 가맹비가 2,500만원 정도로 적었던 것도 매력적이었다. 인테리어와 물품은 모두 본사에서 해 줬다.
하지만 막상 개점하고 보니 매월 150만원씩 적자가 났다. 매월 500만원씩 준다던 지원금은 실제로는 300만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고 이중 가게 임대료와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전기료, 그리고 본사에 송금해야 하는 운영비(전산사용료 소모품비 등) 등을 빼고 나니 오히려 마이너스가 난 것이다. A씨는 적자를 감당 못하고 결국 카드 빚을 지게 됐다. 편의점 창업 1년이 지난 지금 A씨는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 신세다.
그의 선택은 폐점뿐이다. 임대보증금도 모두 까먹어 하루하루 운영해 봐야 손해다. 하지만 문을 닫겠다고 했더니 본사는 4,000만원의 위약금을 내라고 했다. A씨는 그냥 일방적으로 가게 문을 닫아버렸고 지금은 대리운전기사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편의점 전성시대다. 편의점 하나가 들어설 때마다 동네 구멍가게는 하나씩 사라진다. 어느덧 편의점은 전국적으로 2만개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편의점이 급증한 것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그쪽으로 바뀐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편의점 본사들이 소자본 창업희망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출점 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이 쉬운 만큼, 아울러 매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그늘도 깊게 드리워지고 있다.
4일 편의점협회에 따르면 국내 점포수는 7월말 현재 1만8,700점에 이른다. 보광훼미리마트가 지난달 6,000번째 점포를 돌파했고, GS25와 세븐일레븐ㆍ바이더웨이가 각각 5,500점, 5,100점 정도로 '3강'을 이루고 있다. 그 뒤를 미니스톱과 개인 편의점 등이 잇고 있다.
편의점은 최근 유통업계에서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거의 유일한 업태다. 백화점 마트 SSM 등이 상권포화와 규제 등으로 주춤한 사이, 편의점은 2007년 1만점을 돌파한 지 4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이처럼 편의점이 급증하는 것은 ▦SSM 등과 달리 출점 규제가 없고 ▦인테리어 비용 지원 등으로 예비창업자들이 쉽게 창업에 나서기 때문. 하지만 "창업은 쉽지만 경영은 어렵고 폐업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편의점 점주들의 호소다. 이익이 나고 번성하는 점포도 있지만, 왕래가 많지 않은 주택가 편의점들은 한결같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창원에서 편의점을 하다가 매월 200만원씩 적자가 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폐점한 B씨는 본사로부터 위약금 4,000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그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고, 몇 달 간의 조정을 거쳐 2,000만원으로 낮춰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점주들은 본사와의 법적 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위약금을 주고 폐점하거나, 의무영업기간 5년을 버티고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편의점주들은 심지어 계약기간을 채우더라도 기간 만료 3개월 전에 본사에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으면 폐점이 어렵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계약서가 워낙 두꺼워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기 어려운데 '3개월 전에 폐점을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된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예비창업자들은 처음에 본사 직원과 지원금 및 폐점, 위약금 등에 대해 구두 약속을 할 때 모두 녹취해 놓는 것이 좋고 계약서도 두껍다고 대충 넘기지 말고 매우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1999년 공정위가 자율경쟁을 제한한다며 '상권 내 개점 기준'을 없앤 후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수익이 줄어드는 것도 편의점 점주들의 불만사항이다. 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C씨는 "올 3월 개점했는데 4개월 만에 같은 블록 내 50m 떨어진 지점에 똑같은 회사 편의점이 오픈했다"면서 속을 태웠다. 50m는 편의점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담배를 판매할 권리가 주어지는 거리. 출점 가능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새 점포가 들어선 셈이다.
이에 대해 편의점 본사측은 "상권보장 규약을 운영 중이지만 매출이 많은 상권이라면 가까운 거리에 한두 개쯤 더 들어가도 무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점주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이 되겠지만 황금알을 낳는다는 식으로 창업해선 곤란하다"면서 "본사와 점주간 불평등관계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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