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번트는 영원한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화끈한 공격 야구를 저해하는 요소로 팬들의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이기는 야구를 추구하는 현장에서는 필요 불가결한 공격 방법 중의 하나다.
번트에도 주자를 진루시키는 희생번트(스퀴즈 번트), 타자 주자의 출루를 목적으로 하는 세이프티 번트,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페이크번트&슬래시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올시즌도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는 팀들은 이기기 위해 각양 각색의 번트를 시도하고 있다.
페이크번트&슬래시로 재미 본 LG
LG는 최근 두 차례의 기막힌 번트 작전을 시도해 성공했다. 번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상대 수비의 허를 찔러 강공으로 바꾸는 페이크번트&슬래시로 모두 득점과 연결해 승리까지 거뒀다.
박경수는 지난 3일 잠실 롯데전에서 1-1로 맞선 7회 무사 2루에서 초구에 번트 실패를 한 뒤 2구째 방망이를 휘둘러 전진 수비하던 롯데 3루수 황재균의 키를 넘기는 적시타를 때렸다. 정상 수비였다면 평범한 땅볼 타구였다.
지난달 31일 인천 SK전에서도 나왔다.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LG는 5회초 심광호의 3루쪽 기습번트와 이대형의 희생번트에 이은 상대 실책으로 무사 1ㆍ2루 기회를 잡았다. 이어 서동욱의 페이크번트로 우익선상 2루타를 터뜨려 주자를 모두 불러들였다.
3일 박경수의 경우는 초구 번트 실패 이후 바꾼 작전이었고, 서동욱의 번트 동작은 처음부터 페이크였다. 절묘한 3가지 번트를 연속으로 성공시켜 득점을 만들어낸 번트 작전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
그러나 페이크번트&슬래시는 위험 부담도 따른다. 서용빈 LG 타격코치는 5일"슬래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땅볼로 굴려야 한다. 플라이가 되면 희생번트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면서 "의도적으로 찍어 치는 타법을 구사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대처하기는 힘들다. 우리 팀의 경우 스프링캠프에서 번트 훈련 시간을 집중 할애해 선수들이 몸에 밴 결과"라고 말했다. 또 페이크번트는 상대방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으로 LG의 경우 이대형이나 박경수, 김태완 등 거의 100% 번트가 예상되는 타순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곤 한다.
희생 번트로 본 8개 구단
희생 번트의 수를 보면 팀 컬러가 드러난다. 올시즌 희생 번트를 가장 많이 한 팀은 SK로 118개를 기록했고 한화가 104개로 2위, KIA가 102개로 100개를 넘긴 팀은 세 팀뿐이다. 김성근 전 감독과 조범현 KIA 감독의 성향을 알 수 있고, 타선이 약화된 한화도 번트를 많이 댔다. SK는 2009년(128개), 2010년(147개) 3년 연속 이 부문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하게 조직야구로 구축된 SK는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결과다.
반면 선 굵은 야구를 표방하는 양승호 롯데 감독은 8개 구단 최소인 47개의 번트만 기록했다. 김경문 전 감독이 이끌던 두산도 58개, 공격야구로의 회귀를 선언한 류중일 삼성 감독도 63개로 비교적 번트가 많지 않았다. 선동열 전 감독이 이끌었던 지난해 111개로 SK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류 감독의 파격적인 변화다.
롯데는 양승호 감독과 비슷한 성향의 로이스터 감독 때도 번트는 많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60개로 두산(54개)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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