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 스포츠 그랜드슬램 화려함 뒤엔… '스타디움 슬럼가' 그림자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남에 따라 한국은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4대 스포츠 이벤트는 동ㆍ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가리킨다.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 5개국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2013년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해 6번째 국가에 합류할 예정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육상선수권 최다 우승국 미국이 정작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해 8번째로 동ㆍ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국가가 됐다.
한국은 이로써 메이저 국제스포츠 대회를 석권, 대회 유치에서부터 진행까지 세계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경기장을 비롯한 인프라 재활용 면에서는 여전히 낙제점 수준이다.
국제대회를 유치하면 늘 그렇듯 '경제적 효과' 운운하는 자료가 쏟아진다. 모두 장밋빛 일색이다. 현대경제연구소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경제적 효과가 64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40조원으로 추정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구경북연구원도 '생산유발 효과가 무려 5조5,876억원에 이르고, 부가가치가 2조3,406억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놓은 근거자료들을 뜯어보면 신뢰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데이터 부풀리기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한 연구위원은 "최대치에 최대치를 더해 사실상 뻥튀기 수준"이라고 고백했다. 따라서 "경제적 효과 자료는 사기다"라고 혹평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매머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뒤따를 수 밖에 없다. 경기장 신축, 도로 개설 등 기반시설을 완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간접자본이란 명분으로 상당부분 국민들의 혈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지자체들도 지방채 발행과 민자 유치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대회 폐막 후 이들 시설들을 재활용하지 않으면 유지관리비만 연간 수 십억원이 소요돼 고스란히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양 포장하던 경제연구소는 이 대목에선 정작 말이 없다.
실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대구스타디움도 연 20~30억원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대구시는 "세계선수권 폐막 이후에도 마땅한 재활용 방안이 없다"며 "수익 모델이 있다면 가수들의 콘서트 장소로 빌려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마저도 대구시가 내년 전국체전을 준비하기 위해 1년간 대관하기 어려 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대회 사후 경기장 재활용 최악의 사례와 최고의 사례가 월드컵 축구경기장이다.
전국 10개의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기 위해 쏟아 부은 혈세는 1조9,755억원. 그러나 2002 월드컵이 끝난 직후 서울 상암경기장을 제외하고 모두 적자신세를 면치 못했다.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방 경기장은 일부 수익사업을 벌여 적자폭을 줄이기는 하지만 흑자 전환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수요예측과 사후관리, 운영방안을 심도있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상암은 착공단계부터 경기장 주변 상권을 면밀히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기장에 입점시킬 업종까지 고려해 경기장 설계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용선(55) 서울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성공 비결에 대해 '꼼꼼하 기획'을 꼽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서울시는 월드컵이 끝나자 마자 경기장 시설을 개조해 할인점과 복합영화관, 사우나, 예식장 등을 유치해 매년 120억 원의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메이저 스포츠 대회의 진정한 성공은 대회 성적과 경제적 이득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며 "국제대회를 개최할 지자체는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된 시설을 어떻게 사후 활용할 것인지 확실한 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 대회 모두 끝나자… 문 여는 스타디움 쇼핑몰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 때 관람객과 국내외 취재진 등이 겪은 '먹거리 파동'을 초래한 대구스타디움 서편 지하공간 쇼핑몰의 개장 지연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회 개막 전 무조건 개장을 공언한 대구시가 갑자기 폐막 이후 개장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대구스타디움몰'은 시공사의 노임 지급 지연과 하청업체의 부도 등으로 당초 5월 개장에서 자꾸 미루다 개막전 오픈 마저 무산됐다. 7월말, 8월12일, 8월26일 개장 약속이 잇달아 연기됐고 먹거리 파동이 터진 뒤인 지난 1일에야 음식점과 편의점 등이 문을 열었다.
대회 전 개장이 무산됨에 따라 육상대회 특수를 노리고 계약한 입주업체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우선 경기장을 찾은 하루 6만여명의 국내외 관중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릴 기회를 놓쳤다. 또 식당가 입점업주들은 "입점을 결정한 배경에는 대구대회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대회전에 열었으면 초기투자비 회수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늦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비용만 더 들었다"고 탄식했다.
이는 1차적으로 공사지연 때문이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을 의식한 대구시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 몫 했다는 지적이다.
대구시는 8월 초까지만 해도 대회 스폰서사와 경쟁업체에 대해서는 간판을 가리는 것 등을 조건으로 IAAF도 개장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회 직전 일부 업체가 조직위를 상대로 소송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시는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회 이후로 미뤘다. 표면적으로는 감리단이 안전시설 미비 등을 제기해 임시사용승인을 내 줄 수 없었다는 것. 하지만 일부 상인들은 대회 전 개장을 미룸으로써 조직위와 입점업체간 소송 등 분란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개장연기나 영업제한에 따른 손실 책임은 시행사와 시공사의 문제로 대구시나 조직위는 자유롭게 된다.
대구스타디움몰은 대구시가 연간 30억원에 달하는 대구스타디움 운영적자를 줄이려고 서쪽 지하 4만9,886㎡ 부지에 민자 900여억원을 유치해 쇼핑몰을 조성, 할인점과 30여개의 식당을 포함한 150여개의 일반상가, 복합상영관 등이 들어선다. 시는 2008년 6월 칼라스퀘어와 CGV 순수익의 10%와 공연장 매출의 10% 등 연간 5억원 이상의 임대료를 받는 조건으로 실시협약을 체결하고 2009년 9월에 착공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 국비 10억이상 쏟은 국제대회 28개 적자만 8678억
"지방자치단체가 국제대회를 유치할 때 중앙정부가 엄격한 기준을 갖고 승인하겠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올 해초 국회에서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지자체장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더 이상 국제대회가 남발되지 않도록 엄격히 조사하고 분석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현장'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적용될까.
2008년~10년까지 3년 동안 국비 10억원 이상 투입된 국제행사가 28개. 총 사업비는 1조676억원. 하지만 수입금은 1,918억원에 불과했다. 8,678억원의 적자가 났다는 이야기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지방자치단체가 벌인 국제행사 28개에 대한 감사 자료다.
지자체의 무분별한 국제행사 유치 폐해로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이중 최악의 사례로 2016년까지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가 꼽힌다. 감사원은 4,855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회를 주최한 전남도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감안하더라도 2,000억원대 적자는 불가피하다.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는 '권력 놀음'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체육계에서도 "누가 봐도 적자대회가 분명하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불참하는 것도 볼썽사나워 대회에 참가는 하지만 마치 우리가 죄인이 되는 기분"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도 "억지춘향식의 국제대회는 경기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된다"며 "스포츠가 힘있는 일부 지자체장들의 권력행사에 동원되는 듯 해 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부 김기홍 체육국장은 이와 관련 "국비 10억원 이상이 지원되는 지자체 주최 국제행사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들이 최근 들어 경기장을 재활용해 '돈 안드는' 대회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한국이란 나라가 세계인들에게 각인 된 계기가 올림픽, 월드컵 같은 스포츠 이벤트 아니냐"며 국제대회 유치의 긍정적인 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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