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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안철수에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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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안철수에 걸고 싶다

입력
2011.09.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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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로또를 산 적이 없다. 내 판단과 의지가 쓸모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월드컵 축구 등으로 들뜬 때에는 한국팀 승패를 맞추는 내기에 동참한다.

소박한 애국심을 저버리고 냉정한 배팅을 하는 건 치사하기에 무작정 한국팀에 건다. 경험에 비춰 이럴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은 한국팀의 참패 쪽에 거는 것이다. 한국이 이기면 즐겁고, 지면 판돈을 챙기는 위안을 얻는다.

안철수가 벌써'내기'대상이 됐다. 서울시장 출마를 둘러싼 추측, 논란과 관계없이 이미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여론 지지율이 압도하는 걸 보면, 당선 여부를 맞추는 내기 제안이 전혀 성급하지 않다. 정치권 후보는 물론, 진보 시민사회가 대권 후보로 떠받든 박원순을 왜소하게 만든 파괴력은 그야말로 쓰나미 급이다.

기성 정치의 벽 이미 허물어

돌풍의 위력을 가늠하는 정치권과 언론은 애써 경험과 상식에 기대는 모습이다. 그의 비상(飛翔)에 놀란 여야는 급한 대로 박찬종의 고공비행과 추락을 선례로 든다. 객관적인 언론과 전문가들도 정치의 속성 또는 이치를 더 믿고 싶은 눈치다. 평소 그렇게 욕하던 기성 정치와 정치인이 그래도 낫다고 여기거나, 무소속 제3 후보가 정당 정치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날개를 활짝 펴지도 않은 안철수의 정치 비행을 위태로운 곡예, 재주 넘기로 여기는 건 안이하다. 또 턱 없이 오만하다. 강고하다는 기성 정치의 벽을 이토록 쉽게 허문 인물은 기억에 없다. 인물에 대한 유권자의 호오(好惡)와 지지가 그대로 투표로 이어지진 않지만, 안철수는 그런 관행과 인식을 모두 뛰어 넘을만하다.

그가 정치권 밖에서 이룬 업적과 인물 됨됨이를 일일이 되뇌는 건 내 몫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정치와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자임하는 이들에게 결핍된 자질과 미덕을 두루 갖췄다. 시대를 앞서는 비전과 꾸준한 노력으로 독보적 영역을 개척하고, 값진 성과를 망설임 없이 사회와 나눈 이는 드물다. 예컨대, 안철수 연구소의 무료 바이러스백신을 늘 쓰는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그는 천재성과 노력, 헌신과 배려, 첨단과 전통 등의 미덕을 모두 지닌 유별난 인물이다. 탤런트적 면모나 포퓰리스트 자질로 인기를 얻은 이들과는 근본이 다르다.

정치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말한다. 서울시 행정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절묘한 타이밍에 안철수의 정치 비행을 재촉한 오세훈이나 곽노현과 비교해 부족한 자질이 뭔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과는 격과 급이 다르다고 본다. 지금 나와 있는 다른 후보도 안철수보다 나은 건 정치와 주변 경력뿐인 듯하다. 기성 정치가 온통 불신 받는 현실이 안철수가 높이 뜬 토대라는 분석이 옳다면, 정치나 행정 경험을 논하는 건 한가하다.

안철수의 등장에 미국의 로스 페로와 마이클 블룸버그를 차례로 떠올렸다. 페로는 일찍이 IT 신화의 주역으로 부각된 인물로, 199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현직 부시와 민주당 클린턴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재정적자와 극단적 대결정치의 재앙에서 미국을 구하겠다는 출사표로 한때 39% 지지를 얻었으나 결국 19% 득표에 그쳤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반란으로 기록됐다.

싫증나는 정치 바꿀 기회

블룸버그 통신을 창업한 블룸버그는 2001년 뉴욕 시장 선거에 도전,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민주당 지지가 압도적인 뉴욕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섰으나, 유권자들은 사회 정책에서 진보적이면서도 균형재정과 선택적 복지 등 보수적 경제 정책을 표방한 블룸버그를 선택했다. 그 바탕도 민생과 동떨어진 이념 대결, 정치 놀음에 유권자들이 싫증난 때문이다. 그는 재정적자를 해결, 2009년 3선에 성공했다.

도무지 싫증 나는 정치를 바꾸려면, 대통령은 몰라도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 혁명의 기회로 삼을 만 하다. 월드컵 축구 때처럼, 무작정 안철수에 걸고 싶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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