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흥행몰이는커녕 과연 개봉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떠돌았다. 여름시장이 저물고 가을에 접어든 지금 걱정과 조바심은 함박웃음으로 변했다. '블록버스터 트로이카'로 꼽힌 '고지전'과 '퀵' '7광구'를 제치고 거둔 성적이라 뒤늦은 스포트라이트가 더욱 화려하다. 4일 500만 관객을 돌파한 '최종병기 활'의 흥행 성공은 올해 극장가 최대 이변이다.
'최종병기 활'로 여름시장을 장악한 김한민(42) 감독을 1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활을 통한 액션을 보여준다면 관객들이 어느 정도 봐 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도 뿌듯하고 감개무량할 따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 감독은 '극락도 살인사건'(2007)과 '핸드폰'(2009)을 연출한, 충무로의 중견이다. "대학 4학년 때 영화동아리 회장을 꿰찰 만큼 영화를 좋아하던" 그는 "선수하고 싶은데 심판하려니 답답해" 영상사업 관련 회사를 2년 다니다 감독의 길을 택했다.
'최종병기 활'은 김 감독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뒷산 공원에 활터가 있는 동네에서 자란 그는 "화살이 공기를 가르고 과녁에 꽂히는 소리를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고 말했다. "화살 소리가 명징하고도 입체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서 소리를 녹음"한 것도 어린 시절 활에 대한 추억이 작용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기개와 정신을 전하기 위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 3부작을 만들려 했는데 '최종병기 활'이 그 첫 영화가 됐다"고 밝혔다.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는 활과 병자호란 시절 끌려간 조선인들의 모습을 접목시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결과가 좋아서 웃지만 '최종병기 활'의 제작은 급박하게 이뤄졌다. 2월 11일 촬영을 시작해 6월 9일 크랭크업했다. "배우가 조그마한 부상을 입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개봉(8월 12일) 때까지 불과 2개월 후반작업을 했으니 이런 속성 제작도 드물다. '최종병기 활'의 여름 개봉 여부를 놓고 영화인들끼리 내기를 걸기도 했다. 김 감독은 "군대에서 신병교육 받듯이 촬영했고, 3분의 2가량을 찍은 뒤 편집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제작 과정이었으면 아마 내년 설 연휴 때 개봉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최종병기 활'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표절 논란에 휘말려 있다. 숲을 배경으로 이민족의 추격을 따돌리는 장면이 할리우드 스타 멜 깁슨이 연출한 '아포칼립토'(2006)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김 감독은 " '아포칼립토'와 다르게 만들려고 오히려 노력했는데 잘 되는 영화라 유명세를 치르는 모양이다. 논란 자체가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아포칼립토'의 표범처럼 호랑이가 주인공을 돕는 설정에 대해서도 그는 반박했다. "호랑이는 민족의 영물이고 백두산 자락을 배경으로 추격전이 펼쳐지니 등장하지 않으면 되려 이상하다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의 다음 과녁은 아마 일제강점기 독립투사가 될 듯하다.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말들 해도 독립군의 시대인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표현하면 대중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자살 테러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척결 대상만 정확하게 처단했던 의사나 열사들의 의연함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도 말했다.
"아마 블랙코미디가 될 듯해요. 2008년 제작을 추진하다 투자가 잘 안됐는데 '최종병기 활'이 흥행 잘 되길 바란 것도 이 영화 때문이에요. 전 계몽적 메시지만 강조하고 싶지 않아요. 대중과 소통하면서 영화적 가치를 좀 더 풍성하게 펼치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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