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주창해 전세계적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던 부자증세론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회의론이 대두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등이 부자 증세를 잇따라 보류하거나 반대하는 점을 지적하며 부자증세가 충분한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말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소득세 인상과 부유세 추가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철회했다. 스페인도 부자증세를 논의하고 있지만 답보상태. 미국은 공화당이 세금인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지난해 4월 고소득자에 한해 소득세율을 올린 영국은 인상 세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상태다.
제프리 오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세국장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증세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직은 정점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자 세금 비율은 1980년대 초 이후 오히려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1년 70%에 달하던 선진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2000년대 들어 40%대로 떨어졌다. 오웬 국장은 “세율 감소의 혜택이 고스란히 부자에게 돌아갔다”며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세금체계가 1980년대 중반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소득세율 하락 경향은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기업이 내는 법인세율과 상속세율 역시 급속하게 떨어졌다. 실제 OECD 회원국 가운데 부유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3개로 1976년 10개, 1995년 15개보다 크게 감소했다.
각국 재무장관들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부자를 쥐어짜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대신 세제의 합리화와 조세기반 확충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는 편을 추구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하지만 어느 수준이 적절한 세율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영국 재정연구소(IFS)는 세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세율은 40%이며 세율을 50%로 올린다고 해서 세수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IFS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IFS의 이코노미스트 스튜어트 애담은 “40%니 50% 하는 수치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며 “효율적 세율이 33~65% 사이에 있다는 점만 확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부자증세 논란이 수그러든다 해도 부자들은 여전히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각국 정부가 관대하게 허용하던 세액감면과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줄이고 있고, 역외 조세피난처의 이용도 더욱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과거처럼 고율의 세금을 물리는 시절도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데다 부자가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수익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부자들이 현재의 세금제도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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