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에서 10~15년 전 은퇴한 고참 경제관료들이 잇따라 핵심 공공기관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위해 민간 출신을 앉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명박 정부가 '올드보이(OB)'들의 무혈 입성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정권 실세와의 인연이나 학연 등 뒷배경이 있기 때문이라는 억측이 무성하다.
4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일 한국조폐공사 신임 사장으로 경제기획원(EPB) 출신 윤영대(65)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 제청했다. 행시 12회인 윤 사장 내정자는 1972년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재정경제원 예산총괄심의관, 통계청장 등을 거쳐 2003년 30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관가에서는 그의 8년 만의 깜짝 컴백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출신지(경북 울진)와 학교(고려대 사회학과), 그리고 경력(이명박 대통령 후보 상임 특별보좌역)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만 나올 뿐이다.
이달 초 취임한 김정국(64)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윤 사장 내정자보다도 행시 기수(9회)가 3회나 더 빠르다. 환란 당시 재경원 차관보를 끝으로 1998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심일회계법인 고문, 한전 사외이사 등 외곽을 돌다 무려 13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옛 재경원 근무 시절 김대기(행시 22회) 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직속상관으로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김 이사장은 워낙 오랜 기간 잊혀진 인물"이라며 "갑자기 그가 발탁된 이유를 두고 갖은 억측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2일 취임한 진영욱(60ㆍ행시 16회) 신임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90년대 공직을 떠난 재경원 OB다. 한화증권 사장, 한화손해보험 부회장 등 민간 부문에서 일하다 현 정부 초기인 2008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으로 공공부문에 귀환하더니, 이번에 두 번째 자리를 꿰찼다. 재경원 금융정책과장을 지낸 그는 외환위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98년 관복을 벗었지만, 현 정부 들면서 당시 차관이던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현직에 있는 고위직 후배들도 퇴직 후 마땅히 갈 자리가 없는 상황인데, 고참 선배들이 그 자리마저 꿰차고 있다"며 "그나마 정치인 출신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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