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17일 LG전자 CEO인 남용 부회장이 전격 사임했다.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휴대폰시장 '빅3'에 진입했던 LG전자였지만 스마트폰의 거센 물결에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1년도 못돼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었고, 구본무 그룹 회장은 결국 남 부회장을 퇴진시켰다.
관대하고 포용적인 LG의 기업문화를 감안할 때, 주총도 아닌 때에 최고경영자(CEO)를 경질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스마트폰 쇼크가 컸다는 의미였다.
후임은 구본준 부회장. 구본무 회장의 친동생이다. 전문경영인을 배제하고 오너체제로 복귀한 것에서도 확실하게 조직을 추스르겠다는 뜻이 읽혔다.
이제 '구본준 체제'가 출범 1년을 맞았다. '독한 LG를 만들겠다'는 게 구 부회장의 취임 일성이었고 이로 인해 조직의 긴장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 하지만 추락의 진원지였던 스마트폰은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너체제 복귀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LG전자는 확실한 '반전카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와 시장의 시각이다.
LG전자 휴대폰사업은 작년 2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적자행진이다. 지난해 3분기 3,000억원이 넘었던 적자는 지난 2분기 500억원대까지 줄었지만 비용을 줄인 결과이지, 휴대폰사업 자체가 회복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실제 구 부회장 체제 출범 이후 스마트폰 옵티머스 시리즈 10여종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내놓을 만한 히트모델은 없었다.
LG전자의 2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은 620만대로, 애플(2,030만대)과 삼성전자(1,920만대) 등에 비하면 너무 떨어진다. 아이폰과 갤럭시로 양분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설 땅이 없어진 상태다. 그러는 사이 한때 두 자릿수를 넘었던 LG전자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2분기 6.9%까지 떨어졌으며 스마트폰은 5.6%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확실한 모멘텀을 잡지 못하는 한, LG전자가 반등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이 부각되지 못한 상태"라며 "메가 히트 모델을 내놓아야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실적 개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도 LG전자에겐 악재다"고 말했다. 구글이 모바일 운영체계(OS)인 안드로이드와 관련해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할 경우 모토로라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모토로라와 경합관계인 LG전자는 그만큼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LG전자 주가는 현재 연초 대비 절반 수준인 6만3,000원대까지 떨어져 있다.
최근엔 한 연구인력이 이직을 하면서 LG전자의 조직문화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글이 공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당시 LG전자에 대해 "이노베이션(혁신)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이노베이션을 주장만 하는 회사"라고 꼬집었다.
LG전자는 TV와 백색가전, 모바일 등 사업 포트폴리오가 비교적 탄탄하게 짜여져 있다. TV는 3D쪽에서 호조를 이어가고 있고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과 에어컨 등 분야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현 세계IT시장을 주도하는 모바일 쪽에서 반전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다른 분야의 선전도 희석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지금 같은 비용절감 중심의 관리식 경영으론 약간의 수익성은 개선될 지 모르지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휴대폰 쪽에서 빨리 히트작을 내지 못한다면 선두와의 격차는 좁히기 힘들 만큼 벌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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