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마라톤은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믿었다."
황규훈(60ㆍ건국대 감독)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의 말이다. 한국에서 마라톤만큼은 황 부회장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마라톤에 대한 그의 정교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은 선수들은 물론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높다. 국내 톱 마라토너중에서 그의 지도를 안 거친 선수가 없을 정도다. 가장 최근에는 정진혁(21ㆍ건국대)이 있다. 가능성만 있던 정진혁이 황 부회장의 조율로 올해 초 2시간9분대를 찍으며 한국 마라톤의 '미래'로 태어난 것이다.
정진혁이 선두로 나선 한국 남자마라톤대표팀이 4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레이스 단체전에서 6위에 그치며 고개를 숙였다. 정진혁이 2시간17분4초로 23위에 머무는 등 5명의 선수가 모두 중위권으로 처졌다. 정진혁은 골인 직후 허벅지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 병원으로 후송됐다.
출발 당시 기온이 섭씨 24.5도, 습도는 67%였다. 한국팀의 메달 작전은 대구 특유의 폭염속에서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승부를 걸 예정이었다. 케냐와 에피오피아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고온다습한 기온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는 약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습도가 다소 높았다는 점을 빼고는 아프리카 철각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날씨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열기를 식혀줬다.
케냐가 여자마라톤에 이어 남자마라톤도 석권했다. 디펜딩 챔피언 아벨 키루이(29)가 2시간7분38초로 1위로 골인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위 역시 케냐의 빈센트 키프루토(24)가 차지했다.
한편 한국 육상은 이번 대회에서 단 한 명의 메달리스트도 배출하지 못했다. 다만 번외종목인 휠체어 육상에서 유병훈(39)과 정동호(36)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내, 시상대 앞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를 올린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은 이로써 1995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육상선수권과 2001년 캐나다 에드먼턴 대회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노메달 개최국'의 불명예를 안았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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