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 남산 자락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첨예한 논란 끝에 반세기 만에 다시 세워졌다. 전투경찰이 경계 중인 중구 장충동 자유센터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왼편에 이 전 대통령의 금빛 동상을 볼 수 있다. 이승만 동상은 1956년 남산에 건립됐지만, 1960년 4ㆍ19혁명 후 철거됐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남산은 이승만 동상 외에도 역사적 위인 동상이 10개가 더 있는 '동상의 요람'이다. 무슨 사연으로 동상들이 남산에 모여 있는 걸까.
남산 서편 회현동 자락에는 안중근 의사상이 서 있다. 안중근 동상은 1959년 서울 숭의여고 교정에 세워졌다가 1967년 남산으로 옮겼다. 그 후 동상이 실제 모습과 차이가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1973년 같은 자리에 새 동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안중근 기념관이 신축 개관하면서 기존 동상이 균열이 많아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재의 황금빛 동상으로 교체됐다.
지난해 안중근 동상 교체 당시 기존 동상이 친일경력이 있는 조각가 김경승의 작품이라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김경승의 작품인 백범 김구 선생상과 김유신 장군상은 안중근 동상 인근에 그대로 서 있다. 김구ㆍ김유신 동상은 청동빛을 띠고 있다. 올해 4~6월 남산 동상의 보수작업을 진행한 김겸 중앙대 회화보전과 겸임교수는 "보수 전 청동 동상은 임시로 칠한 짙은 녹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며 "페인트를 전부 걷어 내고 자연스럽게 녹이 슬도록 강제부식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을 비롯 최근엔 황금빛 동상이 유행인데, 이들 황금빛은 페인트를 칠한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벗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문화재위원인 전우용 박사의 논문 '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에 따르면 남산에 동상이 본격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생기면서부터다. 당시 정권 2인자 김종필씨가 위원장을 맡아 일사천리로 동상을 세워 나갔다. 전우용 박사는 "처음에는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로에, 퇴계 동상은 퇴계로에 세우는 식으로 장소와 동상을 연계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상을 세우라고 지시하면서 구상이 헝클어졌다"고 말했다.
남산도서관 앞에 나란히 서 있는 퇴계 이황 선생상과 다산 정약용 선생상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1970년 10월 20일 함께 건립한 것이다. 전우용 박사는 "노론 계열인 율곡 이이 동상이 사직공원에 있는 것과 대비해서 남인 계열인 퇴계와 다산 선생의 동상은 함께 남산에 있는 것이 공교롭다"고 설명했다.
남산 동편 장충동 자락에는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만든 유정 사명대사상과 류관순 열사상이 있다. 인적이 드문 남산2호터널 입구에 서 있는 류관순 동상은 원래 1970년 남대문 앞 녹지대에 세워졌었다. 하지만 지하철 공사 때문에 건립 1년 만인 1971년 이곳으로 이전됐다. 회현 자락의 김유신 동상도 시청 앞 광장에 있다가 이때 함께 남산으로 왔다.
장충공원에서 국립극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일성 이준 열사상이 호텔신라를 바라보고 서 있다. 이준 동상은 다른 동상들보다 이른 1964년에 세워졌다. 1963년 이준 열사의 유해가 네덜란드에서 돌아오면서 고조된 추모열기가 동상 건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남산에 유독 항일 위인들의 동상이 많은 것에 대해 전우용 박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제가 남산 자락에 일본식 신사인 조선신궁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는 박문사(博文寺)를 만들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항일 인물들의 동상을 남산에 세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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