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회사 A사는 2007년 국내 한 리조트에서 의사 10여명과 그 가족 등 100여명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열었다. 6일간 진행된 행사에서 의학 관련은 1시간 분량의 동영상 시청뿐이었다. 나머지는 스파와 쇼 등 각종 향응으로 채워졌다. B사는 의사 5명을 해외로 초청해 학술대회를 열면서 항공, 숙식 비용은 물론 유흥비와 선물 구입비까지 1인당 1,000만원씩을 댔다. 자사 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였다.
의사와 병원 관계자들에게 500억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무더기 적발됐다. 수백 억원의 리베이트는 의약품 가격에 거품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고, 결국 소비자의 약값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제약사들의 판매관리비는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 수준으로, 일반 제조업의 3배에 달한다.
공정위는 2006년 8월부터 2009년 3월까지 529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해 온 국내외 제약사 6곳에 과징금 110억1,500만원을 부과했다고 4일 밝혔다. 리베이트 금액은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가 185억8,7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얀센(154억1,900만원), 한국노바티스(71억6,800만원), 바이엘코리아(57억7,500만원), 한국아스트라제네카(40억1,700만원) 순이었다. 다국적 제약사 5곳에 이어 국내 제약사인 CJ제일제당은 20억2,100만원을 리베이트로 썼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제약사는 식사, 골프 접대 외에도 강연료, 자문료를 빙자해 뇌물성 금품을 주는 사례가 빈번했다. C사는 의사 4명을 모아 한 일식당에서 강연회를 연 뒤 1인당 500만~1,000만원의 강연료를 지급했다. 회사에서 만들어준 자료를 그대로 읽을 정도여서 강연회는 핑계일 뿐 진짜 목적은 금품 전달에 있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D사는 평소 자사의 약을 많이 쓰는 의사들을 자문위원으로 선정, 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자문료로 1인당 100만원을 건넸다.
리베이트는 자사에 대한 여론을 좋게 하려는 목적으로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행정직원 등 병원 관계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공정위는 "이번에 적발된 제약사 대부분이 수시로 병원 직원들의 회식비까지 대줬다"면서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의약품만 선택할 경우 효능이 좋으면서 가격도 저렴한 의약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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