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천명한 데 이어서 올해는 공생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졌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왜 그럴까? 치솟는 물가와 취업 못하는 자녀들 대신에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용직에까지 나서야 하는 서민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 마음이 감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8월 소비자 물가가 드디어 5%를 훌쩍 넘어섰다. 서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52개의 생필품 물가를 관리하는 서민물가인 MB 물가지수는 하도 높아서 발표를 포기한 지가 벌써 여러 해 되었다.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시장권력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저술한 란 책이 사상 유례없이 사회과학 저서 중에 100만권이 넘게 팔렸을 뿐 아니라, 미국보다도 더 많이 팔려나가 저자가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샌델은 시장사회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세계는 시장지상주의 시대가 되었지만, 경제양극화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 없는 정치적 구호에는 감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0대 80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경제전문가들이 무제한적 시혜성 복지의 위험성을 경고해도, 각종 투표 결과가 말해 주듯이 서민들은 모두 선택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징표다.
한국사회를 말할 때 권력은 5년 유한하지만, 재벌은 무한하다고 한다.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사회에서는 자본권력가인 재벌들이 가장 막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동지방에서 불고 있는 재스민 혁명도 따지고 보면 헐벗고 굶주린 서민들과 취업할 수 없는 청년들에 의해서 벌어진 민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절대불변의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물이 고이면 바다 같은 호수도 썩어서 사해가 되듯이 아무리 막강한 시장권력도 무너지는 법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우리 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직접 공정과 공생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는 재벌들이 직접 답해야 한다. 그저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면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다행히 최근 몇몇 재벌 오너들이 사재 주식을 출연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고 나서 국민들의 마음에 일정부분 감동을 준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경영권 유지 차원에서 팔 수 없는 주식을 맡긴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비아냥거리지만, 매년 지급되는 배당금만 수십억이 넘는 돈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결단은 아니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원래 기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컴퍼니(Company)는 라틴어인 꿈파네(Cum Pane)가 어원이다. 여기서 꿈은 '함께'라는 뜻이고 파네는 '떡을 나누다'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를 가진 회사라는 조직이 한진중공업 사태처럼 죽기살기식의 노사분규로 파업과 폐업을 일으키는 것은 내부적으로 떡을 절대로 함께 나누어 먹지 않겠다는 막가파식 투쟁이다. 또 하청업체의 단가를 후려쳐서 문닫기 직전까지 압박하거나 자체구매조달회사(MRO)를 만들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중소기업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는 외부적으로 절대 떡을 나누지 않겠다는 놀부선언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기업과 정치가 공감 보여줘야
2,000년 인류문명의 역사를 조명할 때 문명진화의 동인은 인간의 이기심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감적 유전자가 존재해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인류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새로운 해석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의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정의에 목말라 있는 이 시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기업이든 정치든 진정성을 통해 공감을 보이는 길 외에는 없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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