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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898, 문명의 전환' 독립신문·만민공동회…대한민국 근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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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898, 문명의 전환' 독립신문·만민공동회…대한민국 근대가 시작됐다

입력
2011.09.0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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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문명의 전환/전인권 등 지음/이학사 발행·325쪽·1만8,000원

이 책은 생산과정이 매우 특별한 책이다. 대표저자라고 해야 할 전인권씨는 6년 전 작고한 소장학자다.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정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현대사 연구자이면서 이중섭 평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한 미술평론가였다. 책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름은 얼른 기억나지 않더라도 <남자의 탄생> 이라는 책은 떠오를 것이다. 5세부터 12세까지 자신의 인성 형성과정을 되돌아보며 한국 남자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가족문화, 사회구조의 특징을 해명한 이 책은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3년 올해의 책에 뽑혔다. 신춘문예 당선 평론을 고쳐서 책으로 낸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100권의 책으로 전시됐다.

학자며 평론가로 더 활짝 꽃필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소장학자의 재능을 아까워 한 지인들은 그가 써놓고 출간하지 못했던 원고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기 위해 간행위원회를 꾸렸다. 3권 분량의 원고를 모아 처음 낸 책이 <박정희 평전> 이었고 이어 <전인권이 읽은 사람과 세상> 이라는 평론집이 나왔다. <1898, 문명의 전환>은 이미 그가 제목과 부제(대한민국 기원의 시공간)까지 정해 두었던 마지막 책이다.

하지만 모두 9장으로 엮어진 이 책은 그의 원고로 다 채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저작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은 차고 넘쳤지만 병마와 싸우느라 지친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동학인 정선태 국민대 부교수와 이승원 인천대 강사에게 모자란 부분의 집필을 부탁하는 유언을 육성녹음으로 남겼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그들은 이번 출간으로 친구들은 그의 유언을 지켰다.

대한민국 기원을 1898년으로 잡은 것은 그해 만민공동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2월 구국선언을 시작으로 3월 종로에 성인 남성 1만명이 몰려 대한제국의 정책과 정치를 규탄했다. 거듭되는 집회 속에서 연좌법 폐지, 죄형법률주의의 주장과 요구가 터져 나왔다. 당시 종로는 한국 근대 정치의 원형이 생겨나는 자리이자 근대 정치를 학습하는 '조선의 아크로폴리스'였다.

책에서 전환의 시점을 딱 이 한 해로 한정 짓는 것은 아니다. 그 해를 전후해, 이를 테면 일본 일변도의 외세 구도를 일거에 깨뜨리며 '새로운 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준 아관파천이나 문명개화와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말과 글을 통해 공론의 장을 형성한 독립신문의 발행도 문명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성리학이라는 절대 진리에 매인 조선적 양식과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서구식 양식이 대결하며 이후 100여년 동안 형성돼온 우리 삶의 양식 잉태하는 순간에 대한 재조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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