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2일 동트기 바로 직전 새벽녘에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오전 5시께 수도권 등에서 보강된 600여명의 경찰병력은 강정마을로 통하는 제주월드컵경기장 입구를 비롯한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주민과 시민 활동가 등이 밤샘 농성을 하고 있는 중덕삼거리를 완전히 봉쇄했다. 곧 강정마을에는 비상사이렌 소리와 함께 "긴급 상황입니다. 지금 경찰 병력이 강정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주민 여러분, 빨리 나와 주십시오"라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공사장 입구인 중덕삼거리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는 차단됐지만 이곳 지리에 익숙한 주민들의 발걸음을 모두 틀어막지는 못했다. 긴장이 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모여 있던 100여명의 시위대는 "강정마을 지켜내자"며 결사 항쟁을 벌였다. 밤샘투쟁 중이던 현애자 민주노동당 제주도당위원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한데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폭력 경찰 물러가라"고 외치며 저항했다.
오전 6시께 날이 밝아오자 경찰 진입 작전이 본격화됐다. 경찰은 공사 재개를 위해 펜스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한 직후 순식간에 주위를 에워싸고 이들을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주민들 간의 몸싸움이 발생했다. 손영홍 천주교전주교구 신부가 굴착기에 올라 공사 진행을 막았고, 고권일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5m 높이의 탑에 올라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은 이날 공사 진행을 방해한 혐의로 주민과 시민활동가 등 30여명을 연행했다. 여성 주민들은 공사 재개를 위한 펜스가 설치되고 주민들이 경찰에 끌려가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주민은 "연행된 주민과 시민활동가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 경찰이 체포했다. 이런 식의 연행은 불법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경철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경찰이 울타리를 치려고 왔다면 이제 끝난 만큼 철수해달라"며 "내일 예정된 문화제를 계획대로 아름답게 마무리 하겠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도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당사자인 강정마을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외부단체는 즉각 반대 활동을 중시하고, 공권력 투입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주군사기지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주민들을 향해 대규모 육지경찰을 투입해 무력 진압을 시도한 것은 4ㆍ3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도민들에게 다시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행위"라며 "정부와 해군의 공권력 투입에 의한 무력 진압, 연행사태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의회는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왔는데도 공사 강행을 위해 공권력이 투입됐다"며 "모든 불상사의 책임은 중앙정부에 있으며, 주민 동의 없는 해군기지 추진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제주=정재환기자 jung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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