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굴욕/그리스 헤지스 지음·김한영 옮김/아름드리미디어 발행·336쪽·1만5,000원
초강대국 미국이 휘청거린다. 자본주의의 화려한 화장 아래 가려진 민낯에는 엄청난 빚과 불공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제1의 도시 뉴욕만 봐도 하루 평균 150만명의 관광객이 타임스퀘어를 찾는 활기찬 모습이지만 매년 수십억 달러의 재정 적자가 나고 있다.
(원제 Empire of Illusion)>은 이처럼 환상 속에 숨겨진 미국의 본 모습을 까발린다. 최근의 금융위기 훨씬 전부터 미국의 쇠퇴가 진행돼 왔다고 보고 "현실보다 현실 같은 미국의 환상"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 책이다. 뉴욕타임스 등에서 일한 언론인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저자는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허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국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책은 미국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환상으로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 산업, 엘리트주의 교육, 긍정심리학, 기업 정부의 출현 등 다섯 가지를 꼽는다.
그 중 가장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유명인 문화(Celebrity Culture)'로 대표되는 대중문화다. 저자는 프로레슬링과 스타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예로 들어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기는 연예 산업의 폐해를 꼬집는다.
모든 대중문화가 굉장한 무대에서 굉장한 삶을 사는 사람을 칭송하고 그에 못 미치는 사람은 조롱 당하는 현실에서 대중은 유명인을 숭배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자연스레 대중의 관심은 사회적 부정, 증가하는 불평등, 경제 붕괴 등에서 비껴나 유명인의 일상과 같은 하찮은 뉴스로 집중된다. 서민들은 상류층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이유로 사치품을 신용카드로 무분별하게 구입한다.
그런가 하면 포르노그래피 산업은 성 착취의 잔인성과 지배를 미화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포르노그래피 산업이 "죽음의 유혹에 빠진 문화의 번쩍이는 겉모습"임을 설명하기 위해 전직 포르노 배우와 포르노 중독자, 업계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포르노물의 대사와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교육 시스템의 오류도 분석한다. 저자는 경제 체제가 위기를 맞은 직접 원인을 '인문학에 대한 폭력'에서 찾았다. 대학이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면서 기업이 대학을 장악하고 실용성 없는 학문은 모두 퇴출되고 있다.
저자는 또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긍정심리학을 대중문화와 흡사한 포퓰리즘으로 봤다.대중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연예 산업처럼 긍정심리학은 공동체 상실에서 오는 불행을 잊게 하고 '기업 문화에 복종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잘못된 철학을 조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국 금융위기의 근원을 '돈이 돈을 벌어준다'고 믿는 '카지노 자본주의'에서 찾았다. 기업과 결탁한 이른바 법인형 국가로서 미국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책의 핵심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문화는 멸망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대중에게 초강대국의 부조리한 환상과 찬란한 미래의 환상에서 벗어나 새 한계에 책임감 있게 맞설 것을 촉구한다. "쇠락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거나 환상에 집착하면서 소멸하는 것 중 선택하라"고까지 표현한다.
철저하게 미국 사회의 치부를 해부한 책이지만 우후죽순처럼 늘어가는 스타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의 예에서 보듯 우리의 현실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사점이 많은 책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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