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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골목안 풍경 전집' 옹색한 정겨움 한 컷 한 컷…그 골목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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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골목안 풍경 전집' 옹색한 정겨움 한 컷 한 컷…그 골목들은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1.09.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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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풍경 전집/김기찬 사진집/눈빛 발행·592쪽·2만9,000원

사진작가 김기찬(1938~2005)은 30년 넘게 서울의 골목안 풍경을 찍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마포구 중림동을 중심으로 비좁고 남루한 골목들을 드나들며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았다. 마음의 고향으로 불렀던 중림동 골목이 1997년 재개발로 사라지면서 그의 골목 사진 작업도 끝났다.

살았을 때 그는 2003년 제6집까지 6권의 <골목안 풍경> 사진집을 냈다. 거기 실린 사진들과 미공개 유작 34점을 모아 재편집해서 한 권으로 묶은 전집이 나왔다. 총 500여장 중 컬러사진집인 제2집의 58점과 유작 중 15점만 빼고 모두 흑백사진이다. 전집 형식의 사진집은 한국 출판사상 처음이다. 한 작가가 한 가지 주제로 500여장의 사진을 남긴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골목 사진은 친근하고 다정하다. 멋있게 찍으려고 애쓰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런 일상의 장면들이라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옹색한 뒷골목에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자못 비장한 기운을 읽으려 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약해선지 남의 코앞에다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지 못하겠다던 그는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 골목안 사람이 되었고 그들과 한식구처럼 지냈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누비던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 등의 골목은 진작에 사라졌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간에 골목안 풍경은 점점 잊혀져 간다. 삐뚤빼뚤 좁은 길과 낮고 허름한 담벼락,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 가파른 계단, 손바닥 만한 빈터에 가꾼 소박한 꽃밭뿐 아니라 골목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 모여 앉아 이야기하고 놀던 엄마들, 햇볕을 쬐며 하품을 하던 할머니, 뒤굴데굴 재롱을 피우거나 졸던 강아지도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골목 사진에서 사라져버린 혹은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실향민의 정서와 비슷하지 않을까. 비록 불편하고 누추했지만, 골목에는 온정이 있었다. 아파트와 빌딩 숲에 포위된 요즘 서울에서는 찾기 힘들어진 그것, 골목이 그리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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