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풍경이 시를 빚는다는 것이 풍경에 대한 제 시론(詩論)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은현리 들판으로 새벽산책을 나갔습니다. 그 산책에서 구월 들어 풀잎에 맺히는 이슬을 보며 '이슬이 풀잎에 맺힌다'는 내 안의 낡고 오래된 문장 한 줄을 '풀잎이 이슬을 잡아준다'로 수정합니다.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이슬이 풀잎을 붙들어주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풀잎이 제 몸에서 돋아나는 새벽이슬이 또르르 맺혀 아래로 툭, 굴러 떨어질까 싶어 온몸으로 노심초사하는 정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풀잎은 제 몸을 유순하게 구부리거나 제 등을 아프게 휘면서까지 이슬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아침햇살이 이슬을 다시 하늘로 데리고 갈 때까지 숨까지 참고 기다리는 사랑이었습니다. 풀잎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며 나는 또 캘커타 빈민가에서 보았던 마더 테레사 수녀의 손을 떠올립니다. 그의 손이 풀잎처럼 이슬처럼 가벼운 생명들을 꼭 붙들어주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다음 주에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찾아옵니다. 백로 무렵 포도가 제철이어서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고 합니다. 바야흐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다음 계절을 준비하시는 농부의 손에 푸른 포도향이 그윽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주는 새로운 시를 만나며 행복할 것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