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비해 삼겹살 값이 20% 이상 올랐고, 채소 생선 과일은 물론 아이들 과자 값까지 거의 모든 품목이 10% 넘게 뛰었다. 그런데 8월 소비자물가가 5.3% 올랐다니 이해가 안 된다.” 주부 A씨는 통계청이 1일 내놓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실제 정부 통계와 체감물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동향 조사를 보면, 최근 2년간 전세금은 전국 평균 19.7% 급등했다. 하지만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고작 7.4% 올랐을 뿐이다. 통계 수치에서 2배 이상의 오차는 통계자료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고도 남는다. 소비자물가지수와 체감물가 사이에 코끼리 한 마리가 지나가고도 남을, 이처럼 거대한 간극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국민들이 빈번히 소비하는 489개 품목을 대상으로 측정한다. 반면,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개개인이 주로 구입하는 품목에 한정된다. 통계청은 “489개 품목을 대상으로 전체 소비량에 따른 가중치를 적용한 뒤 평균을 내기 때문에 국민들이 느끼는 물가 변동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통계청 조사대상 품목의 적절성 여부다. 소비자들이 거의 사지 않는 품목이 조사대상에 포함되거나 많이 소비하는 품목인데도 대상에 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통계청의 조사대상 목록을 살펴봤더니 캠코더, 전자사전, 유선전화, 연탄 등 소비가 많지 않은 품목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다.
반면, 흔히 외출해서 사 마시는 탄산음료는 보통 캔으로 소비하는데 조사대상에는 1.5ℓ 페트병만 올라 있다. 볼펜도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M사의 0.7㎜ 검정색 볼펜만 달랑 등재돼 있다. 외식 분야는 더 심하다. 떡라면, 해장라면, 치즈김밥, 참치김밥, 카페모카 등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무시한 채 보통라면, 일반김밥, 일반 원두커피뿐이다. 주5일 근무로 캠핑족이 크게 늘고 있지만, 레포츠이용료에는 스케이트장 입장요금만 포함됐다.
단위가 부적절한 경우도 있다. 통계청은 고등어의 경우 길이 35㎝에 무게 400~450g의 최상품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런 제품은 최근 어획량 감소로 시중에서 찾기 어렵다는 게 농림수산식품부의 설명이다.
이런 오차를 줄이기 위해 통계청은 5년마다 품목을 바꾸고 소비량에 따른 가중치도 조정한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해 고쳐지는 건 일부 품목에 국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조정기간을 1~3년 정도로 축소해 좀더 현실감 있고 유연한 통계를 생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개인에 따라 소비 품목이 다르므로 맞춤형 통계도 요구된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2인 가구용 통계’, ‘수험생이 있는 3인 가구용 통계’ 등 비중이 높은 가구형태별로 두세 가지 통계를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에게 유모차, 분유, 기저귀 가격은 의미가 없고,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는 학원비 변동만큼 관심을 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적인 통계는 국민들의 합리적인 소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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