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요즈음 인간 삶의 소중한 단계들을 돈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논쟁을 벌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동에게는 '급식비', 청년에게는 '등록금', 장노년에게는 '생계비'. 다음 이슈는 어린 영유아에 대한 '보육비'가 될 것 같다. 정치인들이 표만 보고 하는 주장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고, 사람까지 보는 주장은 휴머니즘이라고 필자 나름대로 정의했다.
공보육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
아이들은 혼자 크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영유아 보육문제는 부모세대인 젊은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우리나라 중산층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92년의 76.3%이고, 지난해 중산층 비중은 67.5%로 줄었다. 중산층이 줄어드는 것은 실패한 자영업자가 늘어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산층 대열에 아직 남아 있는 923만 가구도 높은 집값과 보육,교육비에 허덕이며 노후를 위해 저축할 여력이 없어서 불안하다. 2010년에는 2003년에 비해 유치원비가 68.9%나 올랐다. 이를 바라보는 20대는 겁먹고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부는 보육예산으로 올해 2조5,000억을 배정하였다고 하나 예산규모가 충분치 않고 저소득층 위주의 집행을 하고 있다. 중산층 또는 직장을 가진 여성들의 보육 갈증을 '확' 풀어 주는 효과는 나지 않는 것 같다. 저출산을 해결한 성공사례로 프랑스가 자주 거론된다. 90년대부터 출산율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여성 취업률 또한 계속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여성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프랑스 사회 전체가 아동보육을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사회전체가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정신으로 '공보육'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의 소모적인 무상복지 시리즈 논쟁은 종결짓고 현실적이고 정교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는 현행 '민간중심의 보육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육료지원'을 통해 재정분담만을 담당하는 정책기조를 '공공보육 서비스 공급확대'로 바꾸어야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조직이 공급자가 되는 현행 시장접근은 보육의 공공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보육시설에 대한 부모들의 수요가 지극히 높다. 2010년 3월 기준으로 국공립시설의 입소 대기자수는 11만6,853명으로 정원대비 대기자 비율은 92.7%에 달하는 데도, 국공립시설의 비중은 전체시설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국가재정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작년 10대 그룹의 매출액이 우리나라 전체 GDP의 84%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력이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저출산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육·교육비 전액지원'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응답이 85.9%로 높았으나, 실제로 세금도 더 내겠다는 응답자는 30.5%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의 조사부담률은 2010년 19.3%로 OECD국가 중에서 낮은 편이지만소득양극화가 심하고 사회안전망이 미비하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 국민이 체감하는 세금부담은 훨씬 크다.
아이들에게 공평한 출발 제공해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최근 그룹 내 여성직원들의 능력을 칭찬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부족하다. 대기업은 대한민국의 여성과 아이들 전체를 바라보는 큰 시각을 가져주기 바란다. 이미 삼성복지재단은 소외지역에 어린이집 수십 군데를 운영하고 있으며 삼성꿈장학재단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를 지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가에서도 잇달아 사회기부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5,000억 규모의 아산나눔재단을 만들고, 또 정몽구회장도 5,000억 사재를 출연해 취약계층 아동의 교육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미국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소득양극화가 큰 나라지만, 카네기, 록펠러,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교육과 복지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것이 양극화를 줄여가면서 부자가 존경받는 문화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공평한 출발' 선에서 사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선진국은 한걸음 더 앞서 가고 있다. OECD의 사회통합보고서 제목에서 보듯이 '강한 출발'로 시작하고 있다.
이명숙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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