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선문답 같은 화두를 앞세운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2일 개막한다. 노자의 첫 구절 '道可道非常道'를 차용한 주제는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란 부제에 드러나듯,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올해 전시는 건축가 승효상, 중국 설치작가이자 반체제 인사인 아이웨이웨이가 공동감독을 맡았고, 44개국 작가 130여명과 기업 73곳이 참가해 130여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이름과 장소를 키워드로 삼아 주제, 유명(Named), 무명(Un-Named), 커뮤니티, 비엔날레시티 등 5개 공간으로 나뉜다. 승효상 감독은 1일 프레스 오픈에서 "관습적인 체계나 분류를 따르지 않고, 다만 이름과 장소를 키워드로 구분한 작품들을 곳곳에 흩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구분한 듯 구분하지 않은 다양한 작품들 사이를 유영하며 관객들은 자연스레 '디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게 된다.
유명, 무명의 디자인
'유명'전에는 바닥에 깔린 1970년대 서울의 위성사진 위로 우주선처럼 떠있는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세운상가 모형이 자리잡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스토리보드와 시각디자이너 안상수가 한 획으로 죽 그은 '알파에서 히읗까지', 놀이공원 대관람차를 연상시키는 건축가그룹 메니페스토의 '자전거 거치대', 서울에서 광주까지 고속도로휴게소에서 파는 모든 에너지 음료를 모아 진열한 디자이너그룹 SM&SM(사사 박미나 최슬기 최민)의 작품 '에너지'도 '이름있는' 작품들에 포함됐다.
'무명'전의 작품들에선 이름 대신 또렷한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전시실 한 벽면에 그려진 '급조폭발물 장비'는 이라크 등에서 반정부 운동가들의 무기인 급조폭발물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들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좀더 빨리 조립할 수 있도록, 혹은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적화됐음을 한눈에 알게 한다. 하지만 누가 이런 걸 개발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밖에 스위스 UBS은행의 직장 유니폼, 일본경찰의 배지, 각국의 사형도구를 비교하는 '처형디자인' 등 저마다의 의미를 담은 '이름없는'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장소와 연결된 '광주 폴리'
전시장 밖에서도 디자인 향연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디자인이 특정장소와 연결됐다. 소실된 옛 광주 읍성터에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공공시설물들이 세워졌다.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형 건축물을 뜻하는 '폴리'(folly) 프로젝트다. 5ㆍ18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금남로 공원은 인도와 차도, 지하상가 입구 등의 복잡한 동선으로 방치된 공간이었다. 이를 스페인 건축가 알렌한드로 자에라 폴로는 나무로 지하상가 입구를 만들고 공원으로 향한 테라스를 만들어 확 트인 시민의 공간으로 되돌려놨다. 폴로는 "기존에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불분명해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었고, 역사적인 흔적들도 모두 사라져 버린 곳을 디자인을 통해 다시 시민들의 공간으로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옛 읍성의 북쪽 문이 있었던 현 충장로 파출소는 아이젠만의 디자인이 덧입혀졌다. 한옥의 99칸에서 영감을 떠올려 이번에는 100개의 칸(프레임)으로 연결된 거대한 구조물을 상징적으로 설치했다.
승효상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디자인이 오브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길 바란다"며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얘기는 결국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는 얘기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062)608-4224
광주=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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