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발(發) 경기악화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부정적 영향은 있겠지만 타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금융시장 불안과 달리 견조한 수출 증가세와 활발한 국내 산업활동이 자신감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들 분야에서마저 이상징후가 고개를 들면서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무려 110%. 수출과 수입액의 합계가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을 정도로 무역은 우리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작년 2월부터 19개월 연속 매달 평균 30억달러 안팎의 무역흑자를 꾸준히 기록한 덕에 지난해 기록적인 경제성장률(6.2%)은 물론, 3,000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 증가도 가능했다는 평가다.
8월 무역흑자가 8억2,000만달러로 19개월 만에 10억달러 아래로 쪼그라든 데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8월의 특수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 무역흑자 기조가 꺾인 게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차관은 "휴가철을 앞두고 8월 수출물량을 7월에 미리 소화한 영향으로 8월 흑자가 잠시 줄어들었지만 9월 이후엔 다시 20억달러대 흑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8월엔 수입증가율(29.2%ㆍ전년동월비)이 더 높았을 뿐 수출증가율(27.1%)도 상당했다는 근거도 들었다.
하지만 계절적 영향으로만 넘기기엔 불안 요소도 많다. 지역별 수출동향을 보면 이번 재정위기의 진앙인 선진국 수출은 감소세가 확연하다. 대미 수출 증가율은 5월 24.4%에서 6월 11.4%, 7월 2.5%로 줄어들다 지난달 -5.9%로 고꾸라졌고, 대유럽연합(EU) 수출 역시 이미 6월(-10%)과 7월(-15.3%)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수출선이 다변화해 우리 수출에서 선진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밖에 안 된다'는 정부의 공언에도 허점이 많다.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침체에 빠지면 우리의 대미 수출뿐 아니라 중국 등 신흥국에서 선진국 수출용 상품 제조에 쓰이는 우리의 중간재나 자본재 수출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2008년 말~2009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한국의 대중 수출도 중간재 중심으로 급감했다.
국내 실물경기에도 이상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7월 산업활동 동향'에서 대표적인 생산지표인 광공업 생산은 전달보다 0.4% 줄어 3개월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한국은행의 경기실사지수(BSI)도 8월 들어 무려 11포인트나 급감하는 등 심리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로 소비와 기업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며 "이는 서비스와 투자에 반영돼 한국경제의 하방위험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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