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저축은행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금융당국이 두 차례에 걸쳐 경영진단을 마친 85개 저축은행 중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5%가 안 되는 곳이 최대 16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들은 촉각을 곤두세운 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3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5, 16개 저축은행에 적기시정조치 통보를 30일자 공문으로 전달했다"며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 저축은행도 제법 된다"고 말했다. 적기시정조치는 자본건전성에 문제가 있으니(BIS 비율 5% 미만)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은행들의 자구책에 따라 구조조정 여부가 결정된다.
금융당국은 공식적으론 부실 저축은행 숫자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심지어 금융위원회는 이날 "금융감독원의 경영진단 관련, BIS 비율이 5% 미만인 저축은행의 수는 확정된 바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최종 발표까지 한 달 가까이 남았지만 7월 5일 시작한 경영진단이 최근 마무리되면서 10여 개(정치권), 5개 안팎(업계 추산) 등 부실 저축은행의 숫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숫자 찍기 행태가 정상적인 저축은행의 경영활동을 방해할 수 있고 적기시정조치 통보를 받는다고 다 망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자꾸 숫자가 거론돼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BIS 비율 5%가 안되더라도 바로 퇴출되는 건 아니다. BIS 비율이 3~5%면 최대 6개월, 1~3%는 1년의 경영정상화 기회를 얻는다. 단, 1% 미만이라면 영업정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준에 거의 근접한 곳에까지 기계적으로 수치를 들이대면 애매하게 피해를 볼 수 있는 저축은행도 여러 곳 있다"며 "이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부실 저축은행 숫자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저축은행들이다. "금융당국의 비밀유지 요청 때문에 적기시정조치 통보 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자회사 매각, 증자, 인력구조조정, 대주주 사재 출연 등 자구노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자회사를 매물로 내놓거나 매각을 검토 중인 저축은행은 7, 8곳 정도다. A저축은행 관계자는 "경영진단을 예상보다 강도 높게 진행한데다 경기마저 좋지 않아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라며 "당국과 조율해 저축은행 지점 몇 개를 폐쇄하거나 자회사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보 명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계열사 매각과 대주주 증자 등 우선순위에 따라 다양한 자구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BIS 비율이 높다고 자부하는 저축은행들은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떠돌아 업계 전체에 혼란을 주고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것 같아 걱정"이라며 "빨리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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