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예능이고 음악은 음악이죠. 저희가 녹음실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예능에서 보여주면 아마 다큐멘터리가 돼버릴걸요."(길)
힙합 듀오 리쌍이 2년 만에 7집 '아수라 발발타(ASURA BALBALTA)'를 발표했다. 공백기 동안 길(본명 길성준ㆍ34)은 MBC '무한도전'에서 '태생적으로 못 웃기는 길'로, 개리(강희건ㆍ33)는 SBS '런닝맨'에서 '직진 개리'라는 별칭으로 주말 안방에 웃음을 선사해왔다.
30일 서울 KBS 공개홀 '유희열의 스케치북'녹화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예능에 비친 모습과 딴판이었다. 오른팔에 짙은 문신을 한 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마이크를 입에 바짝 대고 기도를 하듯 랩을 읊조리는 개리의 모습은 녹화 준비에 바쁘던 스태프들조차 일을 놓고 시선을 고정할 정도로 진지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던 길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옛날로 다시 돌아온 것 같네."
지난달 16일 발표된 '아수라 발발타'에 담긴 13곡은 각종 음악사이트 가요순위 1~13위를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30대 중반에게는 'TV를 껐네' 등에서 개리가 진솔하게 풀어 넣은 성인들의 사랑 얘기가, 10, 20대에게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쌓은 인지도가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아요."(길)
사실 리쌍은 2002년 데뷔 후 '발레리노' '내가 웃는 게 아니야'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굵직한 자취를 남겨온 정상급 힙합 그룹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아 10, 20대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낮았다. "얼마 전 '무한도전' 조정 특집에 길이랑 같이 나갔잖아요. 거기 연습장에 놀러 온 10대 애들이 '쟤네 둘은 뭔데 저렇게 친해'라고 하더라고요." 개리가 당시를 떠올리며 쿡쿡 웃었다.
이번 앨범은 디지털 음을 배제한 아날로그 사운드와 록밴드 국카스텐, 가수 윤미래, 백지영 등 뛰어난 뮤지션들의 피처링, 개리가 자신의 속마음을 투영하듯 적어 넣은 가사들이 특징이다. '음악 관두겠다던 나를 매일 찾아왔던 매니저/ 최부장처럼 나는 다시 달리는 레이서'('회상'), '사회생활 15년 차 믿었던/ 놈의 반은 가짜 아닌 타짜/ 이리와 당장 내 돈 갖고 와 멱살을 잡자/ 그 새끼 하는 말이 낙장불입이래'('강남사짜')
개리는 "박식하게 꾸미지 못해서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쓴다"고 했다. 하지만 힙합이 으레 사회적 반항기가 다분하다는 통념은 리쌍의 음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리쌍의 음악이 어둡게 보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항상 위로가 되는 음악이었어요. 제가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등을 듣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요."(개리)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에서 개리는 말한다. '뭐가 두려워/어차피 내일은 오고 멈추지 않는 이상/너와 내 인생은 아직 뜨거워…'
앨범을 냈지만 음반과 관련한 이들의 방송 활동은 이날 '스케치북' 녹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타이틀곡 '나란 놈은 답은 너다'는 가사가 비관적이라는 이유로 KBS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방송보다는 관객과 1대 1로 소통하는 공연을 더 하자고 결정했단다. "11월에 여는 단독 콘서트를 비롯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 공연 일정을 잡고 있어요. 무대에서 동네 형처럼 관객들과 호흡하며 놀고 싶어요. 방송이 아니라도 저희가 일일이 팬들을 찾아가면 되죠."(길)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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