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에 부자증세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주장은 14일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뉴욕타임스(NYT) 기고로 촉발된 후 바다 건너 유럽에서 더욱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프랑스 퍼블리시그룹의 마우리스 레비 회장은 30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특권 계층이 국가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더 많이 떠안아야 공정한 사회”라며 부자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럽의 부자증세론은 정치권 논란으로 변질된 한국과 달리 부유층의 자발적 각성에 기초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NYT는 “유럽의 슈퍼 리치들이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인한 사회 혼란상을 목도하고 자신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독일의 ‘자본과세를 위한 부자들’ 회원 50명은 29일 “독일이 직면한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재정긴축이 아닌 부유층에 대한 과세”라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부유세 도입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50만유로(7억7,000만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부유층이 2년간 5%의 세금을 더 납부할 경우 1,000억유로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프랑스에서도 로레알의 상속녀, 토탈과 소시에테제네랄의 최고경영자 등 대표 부호 16명이 24일 재정위기 극복이 시급한 시점임을 감안,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매기라고 자청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체몰로 회장은 “사회의 공정성과 연대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간 500만~1,000만유로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에게 특별부가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가뜩이나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유럽 각국 정부들은 부자들의 증세 요구를 적극 활용할 태세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이미 지난주 “2013년까지 연소득 50만유로 이상의 고소득층에게 3%의 추가 세율을 한시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페인 정부도 3년 전 없앴던 부유세를 다시 도입해 부유층 5만여명에게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다 부자 증세를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전임 노동당 정부가 정한 50%의 최고 세율(연 15만파운드 이상 소득자 대상)을 조만간 폐지할 방침이다. 팀 녹스 영국 정책연구센터(CPS) 연구원은 “세율을 무작정 올린다고 세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업가의 근로 의욕을 감퇴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여당도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고소득층에게 추가 소득세율(연대세)를 적용하려던 계획을 추진했으나 연정 파트너인 북부동맹의 강한 반발에 밀려 29일 철회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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