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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낙동강 하천들, 슬픈 운명을 아는 듯 모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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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낙동강 하천들, 슬픈 운명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입력
2011.08.3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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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락객이 강원도만큼 덤벼들지 않는 덕에 경북 내륙에는 강원도보다 더 오지의 느낌으로 남아 있는 하천들이 있다. 그러나 무조건 바닥을 뒤집어 엎고 콘크리트 제방을 쌓는 광기 어린 치수행정에 이곳의 강들도 조금씩 제 모습을 잃어간다. 낙동강의 지류, 맑은 물이 아직은 새들의 서식처와 인간의 마음을 푸르게 적셔주는 곳으로 떠나보자.

길안천은 청송군 방각산에서 발원해 안동시 반변천으로 흘러드는 28km의 자갈 하천이다. 청송군 안덕면에 위치한 신성계곡의 기암절벽으로 '청송 제1경'의 유명세를 얻고 있지만, 이 하천의 진짜 가치는 숱한 수중 생명체의 보금자리라는 데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길안천을 '건강한 하천, 아름다운 하천 50선'에 포함시켰다. 쉬리, 수수미꾸리, 몰개, 갈겨니, 동사리, 종개 등 고유종들이 지천으로 살고 있다.

자갈이 많은 덕에 길안천은 특히 부착조류(규조류)의 천국이다. 총 31종이 1㎠ 당 약 5만1,000개체의 밀도로 관찰된다. 이것을 먹고 사는 다슬기, 두점하루살이 등의 무척추동물이 많고 다시 이를 먹이로 삼는 물고기가 풍부한 것이다. 한국녹색회 이승기 정책실장은 "길안천은 낙동강 지류 중에 생태 환경이 가장 우수한 곳에 속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물고기를 잡으며 놀기에 안성맞춤인 강이다.

길안천 물줄기엔 경상도 양반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는 문화재도 여럿 걸려 있다. 조선 중기 학자 김성진이 가난 속에서 후학을 길러낸 침류정, 17세기 유생 조준도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가 보이는 곳에 세운 방호정 등의 정자가 그것이다. 길안면 묵계리 폭포수 위에 얹힌 만휴정은 마음 속 한 점 티끌도 없는 선비의 경계를 보여주는 이경(異景)이다.

그러나 길안천은 최상류에 위치한 성덕댐의 확장으로 인해 물이 말라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댐을 건설하고 물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지하 도수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지표수가 지하로 스며들어 버린 것이라는 게 환경단체들의 우려다. 태풍 매미의 피해를 본 상류 지역이 직강하천 공사를 서두르고 있어 길안천의 앞날은 더 불투명하다.

김천시와 구미시를 흐르는 감천은 금릉평야, 개령평야, 선상평야 같은 넓은 농경지를 커다랗게 태극 모양으로 감싸 안고 낙동강에 이른다. 삼한시대부터 곡창으로 이름난 곳이다. 수도산, 매산, 국사봉 등 김천의 화강암 지대에서 발원한 강답게 너른 모래톱이 수려한 풍광을 자아낸다. 넉넉한 물산과 경치로 인해 이중환은 '택리지'(1751)에서 감천을 시냇가 마을 가운데 넷째로 좋은 곳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곳 또한 낙동강 대규모 준설로 인한 역행침식이 관찰되고 있다.

회천은 가야의 전설과 한적한 농촌 분위기를 품고 고령군을 질러 낙동강에 이르는 강이다. 약 20년 전 건설된 성주댐이 상류의 흙과 모래를 막고 있기 때문에 강의 품에 비해 모래톱은 빈약하다. 그러나 낙동강에 맞닿는 부분은 다른 모래강에 눌리지 않는 풍광을 보여준다. 물안개 끼는 새벽이나 노을이 모래톱을 물들이는 저녁이면 강변의 몽환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강바닥을 긁어내는 중장비의 소음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청동기시대 흔적인 양전동 암각화, 대가야의 고분군이 지척이라 자녀들과 함께 하는 모래강 답사길에 제격이다.

안동=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내성천변 수려한 경관과 문화재, 영주댐 건설로 위기

내성천에는 물줄기를 따라 수려한 경관과 문화재 등 볼거리가 흩어져 있다.

옛사람들은 내성천 상류의 빼어난 물굽이를 운포구곡(雲浦九曲)이라 불렀다. 구름이 들고 나는 아홉 굽이라는 뜻이다. 버드나무 군락을 배경으로 내성천이 사행(蛇行)하는 평은면 일대다. 유속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전담(箭潭), 물빛이 비단을 두른 듯 고운 금탄(錦灘), 영지산 자락을 감싸는 지포(芝浦) 등이다. 공교롭게도 영주댐이 완공되면 모두 수몰되거나 새 경북선 철로를 놓기 위해 파괴될 운명이다.

내성천 삼백리 물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히는 곳은 영주시가 아니라 예천군에 있다.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류하기 직전 부분, 경진교에서 회룡포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강변을 따라 점점이 들어선 간이역을 경북선 열차가 그림처럼 지나간다. 나지막한 비룡산에 오르면 내성천이 가느다란 길목만 남겨두고 마을을 한 바퀴를 돌아 가는 회룡포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조선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고택들도 있다. 이 가운데 정조 3년(1779)에 지은 괴헌고택, 80년쯤 뒤에 세운 장씨 고택은 수몰지에 위치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신선이 꿈꿀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의 선몽대, 내성천 모래톱을 굽어볼 수 있는 도정서원에서도 안분낙업하는 선비의 고고한 인품을 엿볼 수 있다.

무섬마을은 회룡포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그 덕에 고즈넉한 전통 마을에서 쉬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 두 집안의 세거지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살림집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앞 수백미터 폭의 모래톱엔 강을 건너는 외나무 다리가 걸려 있어 모래강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

내성천의 끝, 금천과 합류한 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엔 500년 묵은 회화나무 곁에 초가 주막이 남아 있다. 반백년 동안 길손들에게 술을 팔던 주모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났지만, 초가지붕 주막에서는 여전히 배추전과 묵 안주에 막걸리 한 잔을 걸칠 수 있다.

영주=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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