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은 늙은 상여꾼의 만가(輓歌) 가락처럼 흐른다. 노년기에 이른 한반도 지형을 천천히 감싸며 구릉과 들, 거기에 뿌리 박은 생명을 어루만진다. 무량겁의 세월 저편에서 침식의 힘을 놓아버린 강은 더 이상 산을 깎아내지 않고 휘돌아 곡류를 이루는데, 물굽이마다 후덕하게 쌓인 모래톱이 편안하고 넉넉한 쉼터가 되어 준다. 그러나 그 풍경은 옛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중장비 굉음에 허리가 절개되고 창자가 파헤쳐진 낙동강은 콘크리트를 뒤집어쓴 인공하천으로 변신 중이다. 너른 하상(河床)에 날마다 물결의 무늬를 새로 새기는 모래의 강을 보기 위해서는, 그래서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첫 굽이. 평은교 아래
지난달 25일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마을로 갔다. 낙동강의 제1지류인 내성천이 몸피를 불리며 크게 휘돌기 시작하는 곳이다. 이쪽과 저쪽 기슭 사이의 거리는 어림잡아 100m, 그러나 깊이는 무릎을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강은 눈으로 본 것보다 깊어진다. 물을 머금은 모래에 움푹 발목이 빠져들기 때문이다. 어기적어기적 강심으로 들어갔다. 기대한 것은 수면에 빛 알갱이가 타닥타닥 튀는 윤슬의 빛 잔치. 하지만 여름도 가을도 아닌 계절의 하늘은 내내 끄무레했다. 소월이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라고 묘사한 모래강의 풍경을, 내성천은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내성천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선달산(1,236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봉화읍, 영주시 평은ㆍ문수면, 예천군 지보면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에 이르러 낙동강 본류와 합쳐진다. 이 하천은 조선시대 기록에 사천(沙川)이라 명명될 정도로 모래가 많았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집계에 따르면 매년 78만㎥의 모래가 쌓이고, 그 중 30만~50만㎥를 골재 용도로 채취한다. 그러나 내성천 모래톱의 가치는 토건업의 잣대를 넘어선다. 모래층은 혼탁한 미립점토나 유기물을 여과하여 수질을 정화,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중ㆍ상류에 비교적 많은 인구가 살고 있음에도 내성천이 수달이 사는 깨끗한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콩팥 역할을 해주는 모래톱 덕분이다.
둘째 굽이. 장씨네 마을
푹푹 꺼져드는 모래톱을 밟는 기분이 묘하다. 바닷가의 백사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벗은 발로 일으킨 잔물결에 모래가 뒤집혀 새 무늬가 생기는 듯하다가도, 이내 유유한 퇴적의 흐름 속에 사멸되고 만다. 부드럽고 느리지만 분명 힘을 지닌 흐름이다. 두어 시간 하류로 걷자 금강마을이 나온다. 400여년 전 인동 장씨가 터를 잡은 집성촌이다. 마을은 사과밭 속에 동그마니 앉아 있다. 마을회관에 노인들이 모여 화투를 치고 있다. 향나무 수피처럼 곱게 주름이 팬 얼굴의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사라지고 말 것에 대한 물음, 노인의 대답은 아득하게 멀었다. "강은 안 흐르니껴(흐르지 않습니까). 그럼, 그렇지예."
금강마을에서 수도리전통마을(무섬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대규모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의 하나로 2009년 12월부터 영주댐을 건설하고 있다. 내세운 목적은 '홍수 조절과 낙동강 중ㆍ하류 지역 수질 개선'이다. 그러나 공사가 완료되면 낙동강 유역의 환경은 오히려 치명적으로 훼손될 것이라는 것이 환경단체의 주장이다. 김금호 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은 "영주댐이 완성되면 금강마을 등이 수몰되는 것뿐 아니라 하류로 운반되는 물과 모래의 공급이 감소, 내성천이 더 이상 낙동강의 정화 필터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쪽 주장이 옳든 간에 모래톱의 파괴는 불가피하다. 수자원공사 측의 예측을 따르더라도 댐 완공 후 내성천으로 유입되는 모래의 양은 17% 가량 줄게 된다.
셋째 굽이. 무섬
내성천이 크게 굽이를 돌아 운동장보다 넓은 모래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고택 50여 동이 보존돼 관광객을 받는 무섬마을이다. 피서철이 지나 구경 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끊어진 곳 없이 펼쳐져 태초부터 여기 있어 왔던 것 같은 모래톱. 하지만 이곳의 모래는 끊임없이 흘러오고 또 흘러간다. 중생대부터 시작된 화강암의 풍화, 아니 시간의 풍화 작용은 한 찰나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아승기겁(阿僧祇劫)의 퇴적 앞에 허랑한 객심이 송연해진다. 은 겁의 시간을 이렇게 설한다. '상하와 사방으로 1유순(80리)인 바윗돌이 깎여 모래가 되는 시간.' 그 시간을 유유히 흘러온 강에 인간은 불모의 벽을 쌓고 있었다.
영주=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내성천
●중앙고속도로 영주, 풍기IC를 나와 안동 방면으로 5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내성천 답사객들이 제일 먼저 찾는 문수면, 평은면에 닿는다. 관광지로 개발된 무섬마을과 회룡포, 선몽대 등보다 이곳에서 모래강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문의 평은면사무소 (054)639-6603.
●짧은 구간에서 맑은 모래톱을 밟아보고 싶다면 상류의 토일천(용각천)으로 가면 된다. 면은면사무소 소재지에서 6km 가량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내명교가 있는 천본리가 나오는데, 봉화군 방향에서 이곳으로 흘러내려 내명천에 합수하는 하천이 토일천이다. 좁은 물굽이마다 예쁜 모래톱이 숨어 있다.
●무섬마을에 고택을 개수한 한옥 민박집이 몇 곳 있고 숙박업소가 많은 영주 시내도 평은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멀지 않다. 영주시에서는 동서울ㆍ강남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가 하루 26차례 있고, 청량리역으로 가는 열차가 하루 8번 운행한다. 문의 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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