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전북 군산시 교향악단의 초청으로 협연했다. 십여 년 전 모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재직할 당시 공연 차 잠시 들렸던 적이 있던 곳이다. 오랜만의 지방 연주이기에 서울을 떠나 교외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기억 속의 군산은 그저 조그마한 항구 도시였다.
요즘 대다수 지방 도시들의 큰 발전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오랜 세월에 몰라보게 변한 전경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공연장에 들어서니 실망스럽게도 옛 모습 그대로였고 일부 보수 작업을 한 흔적과 함께 연주자 대기실 역시 여전히 낙후된 상태였다. 안내해주는 공연 관계자는 양해를 구하며 내년쯤 군산에도 예술의전당 공연장이 근사하게 완공될 것이라는 것을 귀띔해 주었다.
사실 가기 전 걱정했던 것은 공연장이 아니라 리허설 부족과 오케스트라의 기량, 그리고 청중의 수준이었다. 서울 및 대도시에서의 연주는 두세 번, 많게는 그 이상의 리허설을 한 후에 본 공연에 임하는데 비해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소도시에서는 사정상 공연 당일 한 번의 리허설 후 바로 공연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 날 연주 역시 후자에 속한 연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나의 걱정은 기우였을 뿐, 잠시 기다리며 오케스트라의 연습상황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연주 기량이 깜짝 놀랄 정도의 수준 아닌가. 게다가 필자와의 협주곡도 많은 연습으로 다져진 듯 단원들은 거의 악보를 보지 않고 협연자의 움직임에 맞춰주려 노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단 한 번의 리허설로 모든 연습은 종료되었다.
대개 무대 리허설 후 간단한 식사 와 휴식을 취한 뒤 공연에 임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얼마 안 되는 틈을 이용해 단원들은 개인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는 수준급 오케스트라와의 성공적인 공연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공연 중 더욱 놀라웠던 것은 수준 높은 공연 에티켓을 갖고 있는 청중들이었다. 공연 티켓이 모두 팔려 전석 매진이었고 청중의 대부분이 어린 초등학생부터 청소년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연주자들이 연주 중 가장 난감해 하는 악장과 악장 사이의 박수를 친다든지 떠드는 일이 없이 깔끔한 공연이 되도록 배려하는 그들의 행동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 직후 부시장이 협연자뿐 아니라 단원들 개개인에게 직접 격려의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단원들의 모범적이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길이 연주 후의 홀가분함보다 답답함으로 무거웠다.
수십 년 보고 듣고 연주해왔던 수많은 공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클래식계도 대중음악과 마찬가지로 유명세에 관중이 몰리는 것이 사실이다.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니까 구경 삼아 청중이 모이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 경우에는 객석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상황도 종종 볼 수 있다. 반대로 알려지지 않은 공연에서 정말 실력 있는 숨은 인재들도 자주 발견된다. 이런 연주회는 전공자나 애호가들 보다는 가족 친지들의 참석만으로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일회성 연주로 끝나버려 아쉬움을 주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인재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곳곳에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로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지, 보고도 외면하고 키우지 않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송재광 이화여대 음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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