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대흉작이다."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기록 흉작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회가 반환점을 돌았지만 여자 포환던지기에서 대회 타이기록이 나온 것이 전부다. 대회 조직위 안팎에서는 애드먼턴, 파리, 오사카에 이어 역대 4번째로 세계신기록이 나오지 않은 대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31일 현재 남녀 47개 종목 중에서 20개 종목의 챔피언이 가려졌다. 남은 종목은 27개. 대부분 예선전이 끝나 준결선, 결선만을 남겨 놓고 있어 대회진행도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조직위는 올 해초 대구 스타디움 트랙을 기존 우레탄 재질에서 몬도 트랙으로 새로 깔았다. 몬도 트랙은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도 사용된 트랙. 반발력이 뛰어나 '신기록의 산실' '날으는 마법의 양탄자' 등으로 불렸다. 실제 베를린 대회에선 남자 100m, 200m를 비롯해 세계신기록 3개가 쏟아졌다. 이에 따라 대구 조직위도 내심 세계기록을 기대했다. 조직위 고위관계자는 "대구에서 세계기록이 탄생하면 기록이 깨질 때까지 대구가 전세계 육상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며 "상상하기 힘들 만큼 광고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말했었다. 조직위는 실제 대회 개막 30일전까지만 해도 1,2개 종목의 기록 경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인간 번개' 우사인 볼트(25ㆍ자메이카)가 출전함에 따라 그런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볼트가 100m에서 부정출발로 퇴출당하면서 신기록 경신도 물 건너 가는 분위기다. 볼트가 빠진 100m 경기는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금메달이 9초92에 그친 것. 최근 3개 대회(2005년, 2007년, 2009년)에서 가장 느린 기록이다. 9초58 '번개' 볼트에 비유하면 형광등 수준의 페이스다.
기록 흉작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가대항전은 명예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라이벌 대결이 무산되면서 대회가 맥이 빠졌다는 뜻이다. 100m의 경우 타이슨 가이(29ㆍ미국) 아사파 파월(29ㆍ자메이카)이 불참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이와 함께 트랙을 지배하는 '지존'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시대흐름도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칼 루이스(100m, 200m, 멀리뛰기), 마이클 존슨(400m), 세르게이 부브카(남자 장대높이뛰기) 등이 그들이다. 지금은 볼트와 옐레나 이신바예바(여자 장대높이뛰기), 케네니사 베켈레(5,000m 1만m),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마라톤)등이 절대강자로 분류되지만 이신바예바와 베켈레는 이번 대회에서 메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탈락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일찌감치 베를린 마라톤 참가를 위해 이번 대회에 불참을 선언했다.
그러나 기록흉작의 진짜 원인은 세계선수권이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육상만 놓고 보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은 일란성 쌍둥이다. 그러나 상품성과 영향력은 올림픽이 훨씬 크다. 따라서 선수들 사이에서 올림픽 출전 징검다리로 세계선수권을 평가하는 인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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