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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승자는 없었다

입력
2011.08.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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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결국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막을 내렸다.

투표결과에 책임을 지고 오세훈 시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10월 26일 보궐선거에서 서울 시장선거가 포함됐고, 이에 따라 정국은 보궐선거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0월 보궐선거가 내년 양대 선거의 전초전의 성격을 갖게 되면서, 여야 모두 사활을 건 총력전을 준비하는 양상이다.

편 가르고 갈등 부추긴 주민투표

주민투표는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가 시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는 오시장이 주민투표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한 것에서 시작됐다. 경제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하면 복지정책의 방향과 속도에 관해 여야 사이에 정책대결이 벌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때 늦은 감도 있다. 하지만 복지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가운데 작은 현안에 불과한 급식문제를 정치적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과 교착상태가 주민투표가 발의된 배경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정치권의 자성이 필요하다. 더욱이 급식정책에 대한 정책대결의 기회가 되었어야 할 주민투표가 투표 참여 대 거부라는 투표율 싸움으로 전락한 것도 문제였다. 주민투표결과를 시장직에 연계시킨 오시장의 결정도 정책투표를 신임투표로 변질시켰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했다. 결국 이번 주민투표는 무상급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국민들을 편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들을 더욱 허탈하게 하는 점은 주민투표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여야의 태도이다. 한나라당은 야권의 투표거부운동에도 불구하고 25.7%가 투표에 참여한 것은 전면적 무상급식에 대한 우려가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오시장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반면, 민주당은 투표율 미달이라는 결과가 나타난 것은 전면적 무상급식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야의 자의적 해석과는 달리 일반국민들은 주민투표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동아시아 연구원이 지난 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주민투표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각을 보여준다. 투표결과를 한나라당의 승리로 해석하는 입장은 6.6%, 민주당과 야당의 승리로 본 국민은 23.5%에 불과했으며, 70%의 응답자는 승자가 없다고 응답했다. 또 주민투표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응이 잘못되었다는 응답이 각각 73.3%와 66.2%로 나타났다. 주민투표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적 태도에는 주민투표가 여야간 복지정책을 둘러싼 정책대결로 치러지지 못하고 당리당략적 정치과정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불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유증 최소화 방안 고민해야

주민투표는 승자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후유증과 파장은 적지 않아 보인다. 우선 오시장의 사퇴로 서울시의 행정공백이 일정 기간 불가피하다. 또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 오시장이 벌였던 사업들이 중단되면 이 사업들에 들어간 예산이 낭비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서울시민들이 입는 경제적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대목은 보궐선거의 정치적 의미가 커지면서 여야대결이 총력전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이로 인해 국정운영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10월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양대 선거로 이어지는 선거정국에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선심성 정책들이 남발되지 않고, 또한 주요 국정 현안들에 대한 처리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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