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시장직에서 물러나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이전까지 일부 전문가에 국한돼 있던 복지 문제를 서울시민은 물론 전 국민이 자신의 문제로 여기게끔 관심을 환기시킨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주민투표가 끝나자 '아이들 점심 먹이기'라는 구체적 문제는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라는 형이상학적 용어로 둔갑해 전문가들끼리의 논쟁으로 축소되는 모습이다.
8월 초 한국일보는 우리 사회의 복지사각지대를 점검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하면서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닫는 주말 이틀 동안 세끼만 먹고 버텨야 하는 진우(10ㆍ가명)의 딱한 사정을 소개한 적이 있다. 기사가 보도되자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대응은 기민했다. 그러나 그 대응은 진우처럼 돌봐 주는 어른이 없어 밥을 제대로 못 챙기는 아이들이 발생하는 현 복지 시스템의 구멍을 메우려는 것이 아니라, 진우와 지역아동센터 담당자를 찾아내 해당 기사가 거짓이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냐고 윽박지르며 확인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지역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기초생활수급이나 기초노령연금수급 창구 앞에서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을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담당 직원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사정이 딱한 건 알지만 감사가 무서워 규정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런 창구 직원과 앞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복지부의 태도를 보면 다시 한번 "공무원은 국민이 아니라 윗사람을 바라보며 일을 한다"는 생각이 공직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현장 복지 담당자의 상황을 들여다 보면 비판만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혼자서 심한 경우 2,000여명의 복지 대상자를 돌봐야 하는 읍ㆍ면ㆍ동 주민센터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168명의 관리ㆍ감독을 혼자 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의 요양직 직원들에게 하루 하루는 전쟁이다. 실제 7월에는 장기요양보험 수급 신청자의 등급 심사를 위해 현장 조사를 나섰던 요양직 직원이 판정에 불만을 품은 신청자 가족에게 스패너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장기요양보험 수급 혜택을 받게 된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은 올해 32만 명에 육박한다. 지난 3년간 수급자가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이를 담당할 요양직 직원은 한 명도 증원되지 않았다. 현장의 복지 담당 인력들은 정부가 "재정을 건전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예산을 줄이면 대개 복지 현장 예산부터 동결되거나 줄어든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모처럼 관심을 모으고 있는 복지 논쟁이 재원 마련이나 공정 분배와 같은 경제적ㆍ윤리적 차원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복지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차원의 논의로 확대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복지제도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힘없는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작동해야 한다. 따라서 대가를 지불한 만큼 혜택이 돌아가는 시장 원리나 복지 대상자보다 조직의 이익이나 상관의 명령이 우선이 되기 십상인 관료주의에 맡겨서는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다.
그렇다면 복지 시스템을 정부 기구에서 떼어 내 현장 담당자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 주고, 보다 많은 대상자를 발굴해 적절한 복지 혜택을 나눠 줄수록 해당 직원이 더 많은 보수를 받아갈 수 있는 '제3 섹터'를 만들어 독립시키는 것은 어떨까.
정영오 사회부 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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