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허 공세, R&D 투자·전문가 양성해 맞서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는 '특허전쟁'에 대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른바 '특허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허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전문가를 양성하고 특허분쟁에 대비한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특허와 기술표준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적극적 실천을 주문했다.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윤선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 공세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상됐던 일"이라며 "기업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망했다. 특허소송 전문가인 박찬훈 변호사(법무법인 강호)도 "특허를 침해할 경우 손해배상은 물론 제조ㆍ판매가 모두 불가능해져 사실상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만큼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허분야의 전문가 양성도 시급한 과제.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팀의 김기룡 서기관은 "통계에 따르면 전체 기업들 가운데 특허와 관련된 전문가를 확보한 기업이 적게는 5%에서 많아야 20%를 넘지 않는다"며 "기술 자체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야 하고, 각국의 관련 법ㆍ제도의 운영까지도 꿰고 있어야 하는 전문가 양성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이를 비켜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까지는 정부 차원에서도 지식경제부가 예산을 들여 서울대와 공동으로 연간 20여명의 정보통신(IT)분야 특허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는 정도다.
기업들이 특허분쟁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김정중 LG전자 특허센터 상무는 "소송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특성 때문에 그 동안 특허의 등록ㆍ출원 관리나, 상대에 대한 방어에만 치중해왔던 게 사실"이라며 "특허 공세가 강화되는 추세인 만큼 어느 기업이라도 다양한 특허 공세에 대비하기 위한 강력한 특허무기 한 두 개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영모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과학기술전략과장도 "삼성이 애플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만한 특허를 갖고 있어야 하고 그래야 협상도 가능하다"면서 "우수한 특허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맞소송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출범한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같은 지식재산(IP) 전문회사의 역할과 운용에도 주목하고 있다. 박찬훈 변호사는 "민관이 함께 유망한 기술과 특허를 모아 활용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이 특허소송을 남발하는 글로벌 '특허괴물'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대섭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시장과장은 "국가 연구개발 성과물과 공공연구기관, 대학, 국내외 기업의 특허권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권리화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원천특허를 확보해나갈 계획"이라며 "투자자로 참여한 기업들에겐 '특허천사'로서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허법 전문가인 정차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최근의 특허 논란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며 "그간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하드웨어를 빠른 시간 안에 싸게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얼마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느냐로 화두를 옮겨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허 문제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찬훈 변호사는 "특허에 대한 독점적 권리 보장은 특허권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특허권 행사의 내용을 세분화함으로써 권리 남용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고, 국제사회에도 이 같은 고민을 촉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중 LG전자 상무도 "글로벌 특허괴물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자국 산업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현상에 대해 특허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관련 법과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 사법제도가 특허 생산능력 못 따라가…관련법 개정안은 국회서 '낮잠'
글로벌 특허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의 관련 법과 제도를 하루 빨리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 출원 수 세계 5위로 특허 생산능력은 'G5'로 꼽히지만 지적 재산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나 관련 제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후진적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이 많다.
1998년 특허법원을 만들었지만 특허 유ㆍ무효 소송만 가능하고 정작 특허침해 소송은 할 수가 없어 반쪽 법원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특허 유ㆍ무효 소송과 함께 민사소송을 통해 특허침해 소송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간혹 엇갈린 판결이 나오거나 5년 이상 장기화하는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계는 특허법원에서 1심과 2심을 처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전문 법원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도 지식재산 고등재판소를 설치해 소송 처리기간을 크게 줄였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연합(EU)도 관할 집중과 전문성 확보로 특허침해 소송에 대응하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특허침해 소송 항소심을 특허법원으로 집중하기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선진국처럼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허 침해소송 때 소송 의뢰인이 원하면 변호사 외에 변리사도 함께 재판에 들어가도록 하자는 것. 중국은 특허 침해 소송을 변리사가 단독으로 맡을 수 있고, 일본도 2003년 법을 개정해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특허 침해 소송을 담당토록 했다. 미국은 과학기술을 전공한 특허변호사가 주로 소송을 맡는다. 한국만 아직도 특허 기술에 전문성이 거의 없는 변호사들이 소송을 맡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중 LG전자 특허센터 상무는 "특허제도 취지를 잘 살리면서도 무차별적 특허공격으로 산업 발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법과 제도적 측면에 대한 검토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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