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DJ와 흑인 여가수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멤피스'로 지난해 토니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뮤지컬상을 수상한 조 디피에트로(50)는 브로드웨이를 넘어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뮤지컬 극작가다. 그의 대표작이자 오프 브로드웨이 역사상 두 번째로 장기 상연(1996~2008년)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아이 러브 유(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는 한국에서도 2004년 초연돼 1,200회 이상 공연됐다. 이후 '더 씽 어바웃 맨''올 슉 업' 이 소개돼 화제가 됐고 현재는 아담과 이브의 태초의 사랑을 비튼 '폴링 포 이브'(9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와 녹색 괴물의 사랑이야기 '톡식 히어로(The Toxic Avenger)'(10월 16일까지 아트원씨어터)가 나란히 공연 중이다.
허리케인 아이린의 북상 소식이 들려온 지난 2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부촌으로 알려진 업타운 96번가에 자리한 디피에트로의 집을 찾았다. 인터뷰하는 동안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낙천적인 성격"이라는 그는 "1층은 사무실로, 지하를 침실로 쓰고 있어 침수를 걱정하는 보험회사의 전화일 것"이라고 껄껄 웃으며 선뜻 자동응답기 버튼을 눌렀다.
_집을 둘러보니 '극작가=가난한 예술가'라는 편견은 버려야 할 듯하다.
"하하, 난 매우 오랜 시간 극작가로 일했고 무척 열심히 했다. 실은 나 역시 활동 초기 10년간은 아무도 내 작업에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거절도 수없이 당했다. 다행히 처음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진 '아이 러브 유'가 좋은 반응을 얻어 가난에서 탈출했다. 이후에는 그 작품의 명성 덕에 수월하게 일할 수 있었고."
_그럼 초기 10년간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나.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 세 살의 나는 스스로 어떤 종류의 글을 쓰고 싶은지 잘 몰랐고 어떤 일에든 오래 집중하지도 못했다. 안정된 직업을 갖고 글을 충분히 쓰면서 극작의 길에 확신을 갖게 됐다."
_미국식 유머가 많은 당신의 작품이 왜 한국에서 인기 있을까.
"그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웃을 수 있는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인종, 성별, 학력이 달라도 인간이 성장하며 겪는 기본적인 경험은 동일하다고 본다."
_작품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다.
"자기복제를 가장 경계한다. 늘 모든 작품을 다르게 쓰기 위해 애쓴다. 다만 유사성이 있다면 모두 인간적인 코미디라는 점이다."
_비극은 안 쓰나.
"전혀. 코미디에는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진짜 삶이 들어있으니까. 워낙 인생관이 낙관적이기도 하다."
_좋은 극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많이 써 봐야 한다. 또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든 감정이입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의롭든 그렇지 않든 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내가 만든 캐릭터들은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인물들이다."
_재능 없이 노력만 한다고 될까.
"나는 운 좋게 많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목소리를 갖고 태어났지만 어떤 사람은 제한적인 사람에게만 공감을 얻는 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재능의 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매일 한 단계씩 성장해 가는 것이다. 작가는 자격증을 따야 성공이 보장되는 직업들처럼 진입에 제약이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에게 토니상을 안긴 '멤피스'도 조만간 한국에서 공연된다. 그는 한국 프로듀서들이 라이선스를 위해 접촉을 해 왔다며 공연 일정이 확정되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한국에 내 작품이 자주 소개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뮤지컬 수준이 높아졌고 열정적인 관객이 있다는 것을 미국 프로듀서들이 잘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뉴욕=글·사진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