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란 없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그렇게 말했다. 30여년이 지난 2010년 총선에서 영국 보수정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수상은 '빅 소사이어티' 캐치프레이즈 아래"사회란 있다"라고 반대처리즘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대처리즘이 보수가 시장과 손을 잡은 것이었다면 '빅 소사이어티'는 보수가 사회와 손을 잡은 것이다. 빅 소사이어티는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의 탐욕을 견제할 대안으로 사회, 즉 공동체를 주목한다.
'빅 소사이어티'는 일종의 정치프로그램이다. 그 사상적 뿌리는 1995년 보수지식인 데이비드 윌렛트에 의해 주창되고 다듬어진 시민보수주의에 있다. 시장경제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시민보수주의다. 그 주장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이 공동체로부터 규제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장의 거래는 신뢰의 바탕 위에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무엇을 팔아서는 안 되고 무엇을 사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에 존재하는 사회적 전통이나 관습이 소비자의 소비에 영향을 준다. 셋째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노동자 계층의 공동체에서 보듯이 시장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제적 교환의 잠재성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든다.
이제 우리의 경우로 돌아와 보자. 시장경제에 충실해왔던 우리 보수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줄어들면 시장경제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어 왔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국가가 방임할수록 시장은 탐욕을 부렸고 불공정한 시장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은 국가의 몫으로 떠넘겨지고 말았다. 그런 결과 시장은 사악한 것, 국가는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결국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보수주의는 무능하고 사악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동 유연성, 자본 이동의 자유, 경쟁과 효율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제도들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그 원인은 신자유주의 경제제도가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와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중산층과 민주시민 계층이 정치적 안정을 이끌었으며, 또한 새마을 운동에서 보듯이 지역 공동체와 함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왔다.
또 전통적으로 경쟁보다는 좋은 의미의 학연, 지연 등 연대의식이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어 사회 안정과 통합을 꾀하여 왔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도입이후 정치적으로 사회적 불평등, 정의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비정규직, 고용 없는 저성장, 승자독식의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경쟁 일변도의 사회분위기는 일체감, 연대의식, 상호신뢰를 파괴하면서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는 신자유주의에 우리의 몸을 끼워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딱 맞는 시장경제 제도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시장경제 제도들을 떠받치는 문화적 측면, 즉 공동체와 시민사회에 보수주의가 눈길을 돌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신뢰회복을 통한 협력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시장경제도 역동적이 되며 국가발전도 약속할 수 있다.
보수주의가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공동체가 보수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공동체나 시민사회의 협력 없이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국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의 균형적 관계 속에서의 파트너십 형성은 새로운 보수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시민보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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