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노령연금 지급,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 지원, 환경교육 강화….'
정부가 성차별 해소와 성평등 구현을 위해 벌인다는 사업 내용들이다. 정부는 지난해 성차별 해소를 위한 성인지(性認知) 사업에 7조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생색을 냈는데, 사업 항목들을 조사해보니 기초노령연금 지급, 환경교육 강화 등 성차별 해소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업이 절반이나 됐다. 정부 관계자조차 "개별적으로는 꼭 필요한 사업들인데 억지로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해 정책 신뢰도만 떨어뜨린다"고 정부의 과대 포장을 비웃는 실정이다.
30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0회계연도 정부의 성인지 사업 결산서를 분석한 결과, 성평등 구현과 연계성이 떨어지는 주요 성인지 사업은 12개, 지출액은 2조9,830억원에 달했다. 올해엔 관련 예산이 전체 성인지 사업 지출액(7조4,208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3조577억원으로 더 늘었다.
전체 성인지 사업 지출액의 3분의 1을 점하는 보건복지부의 기초노령연금 지급(2조6,910억원)은 성차별 해소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정부는 같은 노인이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빈곤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아 여성의 권익신장을 목적으로 한다는 차원에서 성인지 사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금은 소득기준에 따라 지급하기 때문에 양성평등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기술혁신 개발지원사업(2,797억원), 외교통상부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내초청연수(367억원), 환경부의 환경교육 강화사업(88억원) 등도 성차별 해소와 관련 없는 사업들이다.
더욱이 보건복지부 등 대다수 부처들이 성인지 사업 결산서를 제출하면서 사업 효과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국가재정법은 성인지 결산서에 집행실적, 성평등 효과 분석 및 평가 등을 담도록 하고 있는데도, 부처들은 지출내역만 적어 냈다.
전문가들은 정부 각 부처가 어떻게 성차별을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사업을 끼워 넣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각 부처가 여성일자리 지원사업처럼 여성에게 조금만 혜택이 가면 무조건 성인지 사업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성에 대한 차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 수립단계부터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양성 평등을 위해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처음부터 다시 선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성인지 예산제도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남녀에게 미치는 효과를 고려, 성 차별 없이 평등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여성과 남성의 요구를 고르게 감안해 의도하지 않는 성차별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60여 개국에서 도입했으며, 우리나라는 2008년 성인지예산안 작성지침을 발표하면서 본격 시행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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