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일보에서 관심을 끄는 기사를 읽었다. '국책사업 갈등, 제3의 조정자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새만금, 부안 방폐장, 천성산 터널 등 국책사업으로 인한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데도 뾰족한 해법 없이 때마다 갈등만 반복하는 꼴"이라고 지적하고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신뢰성 높은 사회적 조정자 또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책사업으로 빚어지는 공공 갈등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내놓은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기사에서 예로 들은 사례만 보더라도 새만금 간척사업은 19년 동안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사회 갈등의 증폭이라는 무형의 피해를 입혔다.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역시 지방자치단체장의 독단과 주민 의견 무시로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천성산 터널 공사를 둘러싼 갈등도 허술한 환경영향 평가가 갈등을 키운 사례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거나 조정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갈등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의 사회통합정책실에서 공공갈등 관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기구는 부처 간 갈등이나 개별 부처 수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 데는 유용하다. 그러나 정부가 이해 당사자가 되는 국책사업에 대해선 공정한 갈등 조정 기구가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점에 착안해 사회통합위원회는 최근 유럽 선진국의 공공갈등 조정기구 실태를 조사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다. 1997년에 발족된 이 위원회는 법률에 의해 임명되는 위원장을 포함, 위원은 상ㆍ하원 의원, 환경보호단체 대표, 갈등관리 전문가 등 각계 25명으로 구성된다. CNDP 관련 법률에 의해 업무상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돼 운영되는 위원회는 국가ㆍ지자체ㆍ공공 기관이 추진하는 사업은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사업도 공공토론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원회가 갈등을 직접 조정하는 기구가 아니라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서로 대화를 하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갈등이 예방·조정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실제 발족 이후 약 100건의 사안을 처리했는데, 사업 속도가 빨라지고 시위 횟수는 줄었으며 사업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가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내린 것은 바로 사업자 자신들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골 공항 고속철도 건설인데, 3년 동안의 토론을 거치면서 원래의 노선 보다 경제적인 노선을 개발해 당초 예산 6억6,300만 유로를 2억 유로로 줄일 수 있었다. 노선을 그어놓고 끝까지 관철을 고집하는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다. 영국에선 현재 25명 정도의 갈등 조정인이 있고 민간인 신분으로 공공갈등 조정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로마에는 부부싸움을 다스리는 비리프라카라는 여신이 있었다. 싸움을 심하게 한 부부는 이 여신의 신전을 찾는데,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칙에 따라 한 쪽이 여신에게 호소하는 동안 다른 쪽은 조용히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듣다보면 상대방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말 그대로 들으면 용서할 바가 없지만, 뜻을 이해하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송석구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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