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車·철강·제약·묘목… 모든 산업서 특허가 무기
특허 전쟁은 정보기술(IT)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완성차, 철강, 중공업, 화학, 섬유 등 전통적인 굴뚝 산업은 물론이고, 농작물의 씨앗이나 꽃과 나무의 신품종, 묘목 등의 분야에서도
특허분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과거 기술력의 뒷받침해주는, 비교우위 정도로 여겨졌던 특허는 이제 소송이나 로열티 등을 통해 경쟁업체를 무력화하는 핵심 무기로 돌변했다.
특허분쟁, 안전지대는 없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5월 미국에서 특허 관련 소송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승소하긴 했지만, '특허괴물' 중 하나인 오리온IP가 "컴퓨터를 통한 현대차의 자동차 부품 판매방식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효성도 2001년 타이어 보강재의 하나인 타이어코드와 관련, 미국 하니웰사와의 특허분쟁을 겪은 끝에 승리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브랜드에 비해 특허 출원이 적어 소송당할 우려가 큰 만큼 한시 바삐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공업 뿐 아니라 농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까지 대부분 국내 농가들은 외국산 새 품종의 씨앗이나 묘목을 별다른 신고 없이 들여왔다. 하지만 2013년부터는 원산지 중앙 정부, 지방자치단체, 농가 등에 값 비싼 로열티를 물어야 한다. 이는 농업을 포함한 식품 관련 국제 특허라 할 수 있는 국제식품신품종보호동맹(UPOV)규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50번째로 회원국에 가입했지만, 그 동안 국내 농업계에는 그 중요성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
업계 관계자는 "국내 토종 품종 왜성정향나무를 미국 선교사가 1947년 미국으로 가지고 가서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해 버렸고, 지금 우리가 오히려 로열티를 주고 있다"며 "일본 장미, 네덜란드 백합 등도 특허 문제를 소홀히 했다 큰 코 다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새 품종 개발을 하거나 외국에서 작은 씨앗 하나를 들여올 때도 특허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특허가 경쟁력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세계 철강업계를 바짝 긴장시킨 신기술 제품을 내놓았다. 포스코가 원천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용 초고강도강판(TWIPㆍTwinning Induced Plasticity)'이다. 일반적으로 철강제품은 강도가 높으면 가공성이 떨어지지만, 이 제품은 기존보다 강도는 40% 가량 우수하면서도 연성은 두 배나 뛰어나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코가 마침내 자동차강판 시장에서도 선두로 나설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높은 조업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천 특허기술을 보유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강판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차가 국산차 최초로 2012년형 제네시스에 탑재하는 8단 자동변속기도 100% 국내 기술로 제작됐다. 2007년부터 48개월의 연구기간을 거쳐 완성된 8단 자동변속기는 127건의 특허를 확보한 상태. 현대차는 독일의 ZF, 일본의 아이신 등에서 수입했던 후륜 자동변속기의 국산화에 성공함으로써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 국내 협력업체들의 경쟁력 제고 등에도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 차량을 개발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일본의 도요타가 선점한 수 천여개의 특허기술을 피하는 것이었다"며"자동차 부품의 전장화 트렌드와 함께 그린카 시대가 열리면서 특허확보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스마트폰 예·적금… 외국인 근로자 자동 송금… 금융상품도 특허 경쟁
금융권에서도 특허 경쟁은 뜨겁다. 최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가 보편화하면서 은행들이 관련 기술을 활용한 신상품 개발과 특허 취득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올해 금융 상품ㆍ서비스와 관련해 은행들 중 가장 많은 45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2006~2008년 집중적으로 특허출원을 한 결과다. 신한은행은 2000년대 중반부터 특허 관리에 집중, 특허 출원 및 등록 건수가 260건에 달한다. 역시 은행권 최다다.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 중 변리사를 채용한 곳도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국민은행이 6월 특허를 취득한 'KB스마트폰 예ㆍ적금'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상품은 예컨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소비 욕구를 참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의 아이콘을 누르면 해당 금액만큼 적금이 되고 적립 횟수에 따라 아이콘 적립 우대 이율이 적용되도록 설계됐다. 작년 10월 판매 개시 후 26일까지 6만6,544계좌, 3,730억원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하나은행은 다(多)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을 특허 상품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의 편의를 위해 매월 특정 날짜에 설정 금액이 송금자의 계좌에서 수금자의 계좌로 자동 송금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 6월에 특허를 얻었다.
우리은행도 이달 초 여신 사후관리 지원, 온라인 고객 맞춤 대출 중개 등 두 건의 특허를 등록하는 등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올해만 12개의 특허를 취득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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