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26년 전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선배로서) 두 가지만 얘기해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29일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이 열린 관악캠퍼스 체육관. 후배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연단에 올라 축사를 했다. 그는 2006년 미국 연수중 차량 전복사고를 당해 척추손상으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불굴의 의지로 병마를 이겨내고 연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 측은 사회인으로 첫 발을 떼는 졸업생들이 극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희망을 찾은 이 교수를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축사를 부탁했고, 이 교수는 흔쾌히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우선 사고 이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던 동료 교수들을 떠올리며 졸업생들도 이웃과 사회에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 주길 거듭 당부했다.
그는 미국 소립자연구 전문기관인 페르미 연구소 로버트 윌슨 소장의 발언을 인용해 서울대인들의 사명을 특히 강조하기도 했다. 국방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이 페르미 연구소를 겨냥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들였는데 연구결과가 딱히 나오지 않는다"고 꼬집자, 윌슨 소장은 "군인들이 미국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명분을 우리가 제공해주고 있다"며 소신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 "윌슨 소장의 언급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류의 기초과학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졸업생들도 서울대라는 둥지를 떠나 어디를 가든 자신이 속한 조직의 가치를 먼저 찾고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사람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
졸업생 대표로 나선 정시영(24ㆍ서어서문학과)씨는 "대학 생활 중 어려워진 집안사정으로 흔들린 적이 많았는데, 많은 분들의 격려 때문에 이만큼 버텨낼 수 있었다"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오연천 총장은 졸업식이 끝난 뒤 단과대별 졸업생 대표 및 학부모들을 교내 식당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하기도 했다.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이 전기와 마찬가지로 단과대가 아닌 대학 본부 차원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다. 서울대는 이날 학사 773명과 석사 1,041명, 박사 487명 등 모두 2,281명에게 학위를 수여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