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력 9월의 첫 초승달이 뜨면 무슬림(이슬람 교도)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라마단이다. 하루 중 해가 하늘에 떠 있는 동안은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고 해가 져야 신을 기리면서 음식을 맘껏 먹는 일종의 축제 기간이다. 올해 라마단은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이를 유난히 초조하게 기다린 한 사람이 있으니, 18살의 고교생 이정훈군이다.
"라마단은 그저 고통의 시간이 아닙니다. 저에겐 이번이 첫 번째 라마단인데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기간이었어요. 이젠 밥을 남기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요." 영화음악 감독을 꿈꾸던 그의 의젓한 말이다.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앞에서 만난 이군. 한국예술고등학교 음악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군은 중동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슬람 문화에 매료됐다. 처음에는 좋은 가르침만 얻겠단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스스로 코란(이슬람 경전)을 찾아 읽었다. '진리는 암흑 속에서부터 구별되느니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는 구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군은 원래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저는 하나님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슬람의 하나님이 제가 생각했던 하나님과 비슷한 거예요" 그런 이군도 무슬림이 되겠다는 결심이 쉬 서지는 않았다. 어느 날 '너를 믿고, 너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고, 한 분이신 주님을 믿어라'는 말이 귓등을 때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이군은 코란을 외우고 돼지고기를 삼갔다. 지난 11월의 일이다. 이군은 그렇게 무슬림이 되었다.
라마단을 맞은 이군은 요즘 오전 3시30분이면 일어난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한다. 이군은 몸을 깨끗이 씻고 4시쯤이면 새벽 예배(파즈르)를 하고 코란 공부를 하다가 학교에 간다. 기독교 계열인 이군의 학교에는 예배시간이 따로 있다. 이군은 "솔직히 학교에서는 하기가 힘든데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못했던 예배를 집에서 드리기도 해요.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군은 영화감독의 꿈도 버렸다. 고교를 졸업하면 군 문제를 해결한 뒤 이슬람 공부에 매진하겠단다. 지난 1월부터 주말마다 서울중앙성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군은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왜곡돼 있어 안타깝다"며 "이렇게 관람객들을 안내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질문에도 답해주고 오해도 풀고 싶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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